아놀드 토인비(1889~1975)의 학부(영국 옥스퍼드대) 전공은 고대사였다. 위대한 역사학자의 현대사에 대한 관심은 졸업 후 사적 조사차 아테네와 로마에 머문 데서 비롯됐다. 발칸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2300년 전 그리스 내란 시작 때와 흡사하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던 것이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영국 측 중동지역 전문가로 활약한 그는 1927년부터 《역사의 연구》 집필에 착수,31년 만인 1958년 완성했다(12권).역사란 도전과 응전의 결과이며,발전은 창조적 소수에 달렸다고 주장한 그는 여든살이 지난 1971년과 1974년 젊은층에게 주는 《미래를 살다》와 《삶의 선택》을 펴냈다.

《젊은이를 위한 대화》는 이 두 저서의 내용을 모은 것으로 인생의 목적,사랑과 성,세대 간 괴리 같은 동서고금 모든 젊은 세대의 가슴을 짓누르는 문제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역사학자로서 현실 정치와 외교문제에 두루 관여했던 덕일까,석학의 조언은 4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다.

그는 인생이란'인간성의 합리적인 면과 비합리적인 면의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정의한다. '삶과 세상을 보다 나아지게 만들려는 노력의 결과가 신통하지 않았다고 실망하거나 분개하지 말라.한 세대 만에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순 없다. 조금이라도 개선시켰다면 그 인생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

또 '카르마(業)'를 이해하라고 권한다. '젊은 세대의 불안과 분노 절망감,기성세대에 대한 원망은 윗세대가 마땅히 해놨어야 할 개혁을 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데서 기인하는 일로 극히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그 같은 질책은 권력을 지닌 세대가 고의적으로 자신의 직무를 회피하고 유기한 경우에 한정돼야 한다. '

우리 모두는 과거 유산,곧 대대로 누적돼온 카르마에 의해 제약받는 만큼 누구도 하루아침에 벗어나긴 어렵다는 사실을 이해하란 얘기다. 아울러 동정심과 관대함을 잃지 말라고 말한다. 사상과 이상이 잘못됐다 싶으면 저항하고 타파하려 노력하되 미움 없이 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폭력적이 되지 말라고 다독인다. 항의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힘 있는 세력이 독선적 혹은 바쁘다는 이유로 주목하지 않거나 조소할 경우 폭력에 호소하고 싶겠지만 그러지 말라고 강조한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부를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대신 동시대의 위대한 혼에서 평온과 인내를 본받으라고 덧붙인다.

그에 따르면 교육이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시켜 바른 생활양식을 찾는 과정'이며,지식인의 목적은 '최대의 이익이 아니라 최대의 서비스'여야 한다. 이혼에 대해선 '사람의 본성은 복잡 미묘해서 일부일처제를 평생 유지하는 일은 어렵지만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 가능하면 참아 보라'고 당부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죽을 때까지 젊은이의 정신을 잃지 말라'고 역설한다. '젊어선 다들 우리는 윗세대와 다르다,완고하거나 편협하지 않고 체면에 얽매이지도 않는다고 되뇌인다. 그러나 나이 들면 어느 틈에 자신들이 그토록 반대했던 것들에 익숙해진다. 중년이 돼도 방어적이고 억압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라. 사랑으로 적의를 이겨내고.' 뜨끔하다.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