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채권단이 대출 계약서 제출 시한을 28일로 못박으며 현대그룹을 압박하고 나섰다. 현대상선 프랑스 현지 법인이 나티시스은행에서 빌린 돈의 성격을 밝혀 부실 매각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현대그룹이 대출계약서 제출을 계속해서 거부하면 29일로 예정된 양해각서(MOU) 체결 시한을 연장하거나 예비협상대상자에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전망도 나온다.

◆채권단 강경 선회

채권단 관계자는 25일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자금 중 1조2000억원을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서 담보 없이 대출받았다고 밝혔기 때문에 대출계약서를 내라고 요구했다"며 "현대그룹이 28일까지 대출계약서를 내지 않을 경우 MOU 체결 시한을 연장해야 할지,예비협상대상자와 협상을 시작해야 할지 등을 놓고 법률적 검토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자금 5조5100억원 중 1조2000억원을 나티시스은행에서 신용만으로 대출받았다고 설명해왔다. 채권단은 자본금 33억원인 현대상선 프랑스 현지 법인이 담보 없이 많은 돈을 빌린 것을 놓고 논란이 거듭되자 대출계약서 제출을 요구했으나 현대그룹은 거부해 왔다. 채권단은 지난주 현대건설 인수자금 출처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을 때 "적합한 심사 기준에 의해 우선협상대상자를 골랐기 때문에 자금 출처는 MOU를 맺은 후에 밝혀도 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24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이 의원들로부터 자금 출처를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을 듣자 다음 날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동반부실에 빠졌던 사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채권단이 현금 동원력만 중요하게 보고 건전성 검증은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채권단을 압박했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대출계약서를 확인하지 않으면 MOU를 맺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으로 협상권이 넘어가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은 다시 현대그룹으로

이에 따라 현대그룹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관심사다. 현대그룹은 이날 "MOU를 맺는 게 우선이고 MOU에 따라 추가적으로 필요한 증빙자료가 있으면 제출하겠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이 결국 MOU를 체결하지 못할 경우 법정 다툼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현대그룹은 채권단이 정한 기준대로 평가를 받았고 인수자금 출처에 대한 증빙은 심사 당시 있지도 않았던 기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이 자금 출처 논란의 배후에 있다며 이날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현대차그룹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김용태 한나라당 의원이 제기한 외국환 관리 규정 문제도 현대그룹이 해명해야 할 대목이다. 김 의원은 24일 정무위에서 해외 법인이 빌린 돈은 상거래 대금일 때에만 국내에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채권단 측은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에 유권해석을 의뢰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재정부 관계자는 "현대그룹 측이 프랑스 은행으로부터 신용만으로 1조2000억원을 대출했다는 소명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사실 관계 규명이 먼저 이뤄져야 외국환거래법 위반인지 여부를 가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차주가 본사인지 현지 법인인지,보증인이 있었는지,차입 목적이 뭔지가 명확히 밝혀지기 전에는 정부가 유권해석을 내릴 형편이 못 된다"고 덧붙였다.

이태훈/정종태/박동휘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