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듯했다. 25일 오후 중국 광저우시 아오티 주경기장.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100m 허들' 결승전.3명이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하다시피 하자 경기장은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누가 1등인지 알 수 없는 상태.잠시 뒤 TV카메라가 이연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13초23.카자흐스탄의 나탈리아 이보닌스카야(13초24)를 0.01초 차로 제친 1위였다. 이연경은 레이스 중후반까지 이보닌스카야에게 뒤지고 있었지만 10번째 허들을 넘으면서 막판 스퍼트에 성공,한국 여자 단거리 트랙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란 영예를 거머쥐었다.

올해 스물아홉이지만 지난 5월 한국신기록(13초03)으로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땄고,6월 전국선수권대회에서 그 기록을 다시 갱신했다(13초00)."나이 많아 안 되고 여자라 안 된대요. 그런 거 깨고 금메달 땄잖아요. 서른살은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될 거예요. " 0.01초의 승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려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슬아슬했던 걸로 치면 인라인롤러 부문의 안이슬도 마찬가지.'여자 300m 타임 트라이얼'에서 26초870으로 중국의 짱잉루를 불과 0.023초 차로 따돌렸다. 말이 쉬워 0.023초지 자유형 100m 금메달리스트 박태환과 거의 똑같이 터치패드를 찍은 듯했던 2위 루지우와의 차이가 0.28초였던 걸 감안하면 과연 어느 정도 시간인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신승을 거둔 이들과 달리 안타까웠던 이도 적지 않다. 사이클 남자 180㎞ 개인 도로 경기에서 1위로 들어오고도 뒤따르던 홍콩선수(웡캄포)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반칙이 선언돼 금메달을 놓친 박성백 선수의 일은 가슴 아프다.

오늘 저녁이면 온 국민이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난다. 0.01초,한 끗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건 스포츠에 그치지 않는다. 문제는 한 끗 차이로 이겼을 때보다 졌을 경우다. 억울해 가슴이 터질 것 같겠지만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으면 내일은 없다.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는 "어려운 때일수록 유혹에 빠지지 말고 문제를 바로잡으면서 내일에 대한 믿음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메달을 따지 못해 서운하고 속상할 선수들은 물론 비슷한 처지의 이들 모두 언젠가 자신에게도 다가올 0.01초의 승리를 위해 신발끈 다시 매고 뛰었으면 싶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