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평도 포격 발생 엿새째인 28일 오전 방사포 공격 가능성이 또다시 포착됨에 따라 연평도에 긴급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이날 대피령은 40분 만에 해제됐으나 섬에 남은 주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남은 주민들은 "이제 섬에 남아 있는 것도 한계에 이르렀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하게 살아야 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연평도에 가족을 남겨둔 채 앞서 인천 등으로 대피한 주민들도 이날 마음을 졸인 채 가족 걱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농협 앞 대피소에만 100여명 몰려

군 당국은 이날 오전 11시18분 "연평도에서 포성이 청취되는 등 북한의 포격 도발 징후가 포착됐다"며 주민들을 긴급 대피시켰다. 현지 주민 20여명과 복구 인력,공무원 등 200여명은 마을 안에 있는 대피소 4곳으로 몸을 피했다. 이에 따라 오전 11시30분께 연평도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인천발 여객선은 소청도로 긴급 회항하기도 했다.

최철영 연평면 상황실장과 119 대원 등 4명은 긴급 대피를 지시하는 방송이 나오는 와중에도 1t 트럭을 탄 채 대피소에서 대피소로 달리며 전원이 무사히 탈출했는지 확인했다. 해안 진지 곳곳에는 옛 일본군의 동굴에까지 해병대가 배치됐고,북측의 해안상륙이 가능한 지점에는 박격포병과 통신지원차량이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마을 길 곳곳에는 해양경찰 특공대원과 군인들이 깔려 보이는 사람마다 대피소로 피신시켰다.

가장 많은 인원이 몸을 피한 농협 앞 대피소에는 100여명이 몰려들어 큰 혼잡을 빚었다. 이날 노모를 뭍으로 모시려던 주민 박철훈씨(56)는 "좀 전에 어머니가 나가실 수 있도록 여객선 부두에 나가려 했었지만 여객선이 앞바다에서 발이 묶였다고 하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박씨는 긴급 대피 상황을 염두에 두고 미리 보자기에 싸놓은 담요까지 들고 나왔다. 주민 박진구씨(51)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정말 앞날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피령이 오전 11시57분께 해제됨에 따라 거주지와 안전한 장소로 이동했으나 "정말 북한이 포를 쏘는 거냐"며 이날 내내 두려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해병 연평부대는 대피령 해제 후인 오후 12시3분께 "현재 연평도는 통합방위 을종 선포 지역이므로 통제에 즉각 협조해 달라"며 "가급적 통행을 삼가고 파편 및 포탄 잔해를 발견했을 때는 군 작전본부로 즉각 알려달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또 터지면 정말 큰일인데"

북한의 방사포 발사 가능성으로 연평도에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천시 신흥동에 있는 연평도 피난민 임시숙소인 인스파월드에도 긴장감이 돌았다. 주민들은 건물 2층 대형 홀에 마련된 TV 앞에 모여 앉아 연평도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남편이 이날 오전 연평도행 여객선을 타고 들어갔다는 강유선씨(67)는 옆에 있던 이웃들에 "우리 영감이 들어갔는데…"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연평도에서 민박을 운영하는 강씨 부부는 지난 23일 포격 후 급하게 피신하느라 불도 켜놓고 전기 플러그도 꽂혀 있어 남편이 살피러 들어간 것이었다. 강씨는 "여객선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며 "제발 오늘이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TV 바로 앞에 자리잡고 앉아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박춘옥씨(46)도 "연평도에서 군무원으로 근무 중인 남편이 너무 걱정된다"며 입술을 떨었다. 박씨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날 포탄이 떨어지던 모습이 생생한데 주민 대피령이 또 내려졌다니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고 말했다.

인천=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