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표트르 대제의 수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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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을 자릅시다. " 17세기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 때의 이야기다. 표트르 대제는 유럽에 비해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러시아를 발전시키려면 유럽 문물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유럽화 정책의 첫걸음은 후진성의 상징인 긴 수염을 자르자는 것이었다.
그러자 귀족과 교회들은 "하느님이 주신 신성한 수염을 깎을 수 없다"면서 일제히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때 표트르 대제가 꺼내든 카드가 이른바 '수염세'였다. 수염을 기르려면 해마다 100루블씩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수염세 도입 7년,주류사회에서 턱수염은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세금 체계가 한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법인세 인하가 부자감세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부자감세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이들은 법인세율 인하가 대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부자감세'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2008년 법인세는 39만8000여개 기업이 신고했는데,이 중 과세표준 2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은 4만여개로 10%를 조금 넘는다고 한다. 쟁점이 되고 있는 법인세율 인하의 1차 수혜자들이 이들일 테니 자료만 보면 법인세율 인하는 일부 대기업의 세부담만 덜어주는 것 같이 보인다. 여기에 과거 몇 년간 경기가 좋지 않아 세수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는 반면 쓸 곳은 늘고 있다 하니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공허한 주장만은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확고하다. 사실 감세정책이란 납세기업의 부담을 덜어 기업의 활력을 북돋아 주자는 것이다. 기업 활력이 생기면 경제 전반적으로 투자와 고용을 더 많이 이끌어낼 수 있고 이는 국민 전체의 혜택으로 돌아간다.
재정건전성의 경우에도 시야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1개국의 1990년대와 2000년대 상황을 비교해 보니 법인세율은 5.6%포인트 인하됐지만 법인세수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0.9%포인트 증가했다. 감세를 통한 기업 활력이 경제성장을 이끌고,이는 세원을 확대시켜 장기적으로 더 많은 조세수입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다.
홍콩,대만,싱가포르 등과의 투자경쟁 방정식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경쟁 시대에 이들 국가의 법인세 16~17%를 뒤로 하고 24.2% 세금을 선뜻 내면서까지 한국에 공장을 짓겠다는 글로벌 기업은 찾기 어려워 보인다. 달리 보면 한국에 정착한 기업들 역시 올해 법인세를 대폭 낮춘 대만에 빼앗길 수 있다.
정책의 신뢰성도 중요하다. 법인세율 인하는 당초 올해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것을 작년 말 국회에서 2년간 유예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인하 자체까지 취소하면 기업 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조세정책에 대한 믿음도 무너질 것이다. 납세자들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향후 국가 운영에 복병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부자 감세 논쟁에 대한 우리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때다.
이동근 <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dglee@korcham.net >
그러자 귀족과 교회들은 "하느님이 주신 신성한 수염을 깎을 수 없다"면서 일제히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때 표트르 대제가 꺼내든 카드가 이른바 '수염세'였다. 수염을 기르려면 해마다 100루블씩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수염세 도입 7년,주류사회에서 턱수염은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세금 체계가 한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법인세 인하가 부자감세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부자감세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이들은 법인세율 인하가 대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부자감세'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2008년 법인세는 39만8000여개 기업이 신고했는데,이 중 과세표준 2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은 4만여개로 10%를 조금 넘는다고 한다. 쟁점이 되고 있는 법인세율 인하의 1차 수혜자들이 이들일 테니 자료만 보면 법인세율 인하는 일부 대기업의 세부담만 덜어주는 것 같이 보인다. 여기에 과거 몇 년간 경기가 좋지 않아 세수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는 반면 쓸 곳은 늘고 있다 하니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공허한 주장만은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확고하다. 사실 감세정책이란 납세기업의 부담을 덜어 기업의 활력을 북돋아 주자는 것이다. 기업 활력이 생기면 경제 전반적으로 투자와 고용을 더 많이 이끌어낼 수 있고 이는 국민 전체의 혜택으로 돌아간다.
재정건전성의 경우에도 시야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1개국의 1990년대와 2000년대 상황을 비교해 보니 법인세율은 5.6%포인트 인하됐지만 법인세수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0.9%포인트 증가했다. 감세를 통한 기업 활력이 경제성장을 이끌고,이는 세원을 확대시켜 장기적으로 더 많은 조세수입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다.
홍콩,대만,싱가포르 등과의 투자경쟁 방정식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경쟁 시대에 이들 국가의 법인세 16~17%를 뒤로 하고 24.2% 세금을 선뜻 내면서까지 한국에 공장을 짓겠다는 글로벌 기업은 찾기 어려워 보인다. 달리 보면 한국에 정착한 기업들 역시 올해 법인세를 대폭 낮춘 대만에 빼앗길 수 있다.
정책의 신뢰성도 중요하다. 법인세율 인하는 당초 올해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것을 작년 말 국회에서 2년간 유예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인하 자체까지 취소하면 기업 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조세정책에 대한 믿음도 무너질 것이다. 납세자들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향후 국가 운영에 복병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부자 감세 논쟁에 대한 우리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때다.
이동근 <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dglee@korcha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