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내기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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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층은 약속할 때 시간과 장소를 확정짓지 않는다. 기껏해야 '6시쯤 홍대 근처에서' 하는 식이다. 부모가 "무슨 약속이 그러니"라고 물으면 "우린 다 이래요"란 답이 돌아온다. 그리곤 이동하면서 문자메시지로 "어디니""거의 다 왔다" "그럼 어디로 와라" 하는 식이다.
휴대폰이 만들어낸 풍속이다. 기술이 삶의 문법을 바꾼 셈.이러니 때와 곳 모두 늘 가변적이다. 약속한 시간에 늦을까 노심초사하던 기성세대의 머리론 도통 이해하기 힘들다. 누가 어디서 몇 시에 누구를 만나는지 알아낸 뒤 몰래 따라가던 일이 불가능한 것도 물론이다.
우리만 이런 것도 아닌지 미국에서도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는 나중에 정하기로 하는 '어프록시미팅(approximeeting)'이란 말이 어른들은 잘 모르는 신조어 중 하나로 꼽혔다는 소식이다. 대략(approximate)과 만남(meeting)을 합친 말로 '대강의 약속'을 뜻한다는 것이다.
뿐이랴.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내비게이터(navigater) 역할을 하기는커녕 "차선을 바꿔라" "저쪽으로 가야 하는데 잘못 들어섰다" 등 잔소리(nag)만 계속해 운전자를 헷갈리게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어프록시미팅을 소개한 미국 일간지 시카고트리뷴의 '기발한 신조어 10'에 '내기베이터'(nagivator)'가 포함됐다는 걸 보면 그렇다.
신조어가 탄생되는 데엔 나름대로 방식이 있다.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하고,사람을 위주로 하며,인터넷언어와 생활용어가 합쳐져 만들어지는 게 그것이다. 우리의 경우 '삼팔선 사오정'에 이어 '체온퇴직(36.5세 퇴직)''사고무친(40대는 고독하고 친구도 없다)'이란 말이 생겨난 것도 그렇고 무슨무슨 족이 많은 것만 봐도 그렇다.
내기베이터란 말이 나오기 전에 국내에선 '나토(NATO,no action talk only)'란 말이 유행했다. 사람이나 조직을 바꿔야 한다며 실컷 성토해놓곤 막상 필요한 행동을 하자면 뒤로 빠지는 사람,모임의 장(長)을 차지하기 위해 각종 공약을 내걸어놓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 등 행동 없이 말만 앞세우는 사람을 통칭했다.
내기베이터와 나토엔 공통분모가 있다. 실천력 없이 괜한 훈수나 말잔치로 정작 운전하는(일하는) 사람을 방해하거나 방향을 잘못 들어서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을 그르치지 않으려면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럴싸한 말에 넘어가지 않는 수밖에.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휴대폰이 만들어낸 풍속이다. 기술이 삶의 문법을 바꾼 셈.이러니 때와 곳 모두 늘 가변적이다. 약속한 시간에 늦을까 노심초사하던 기성세대의 머리론 도통 이해하기 힘들다. 누가 어디서 몇 시에 누구를 만나는지 알아낸 뒤 몰래 따라가던 일이 불가능한 것도 물론이다.
우리만 이런 것도 아닌지 미국에서도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는 나중에 정하기로 하는 '어프록시미팅(approximeeting)'이란 말이 어른들은 잘 모르는 신조어 중 하나로 꼽혔다는 소식이다. 대략(approximate)과 만남(meeting)을 합친 말로 '대강의 약속'을 뜻한다는 것이다.
뿐이랴.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내비게이터(navigater) 역할을 하기는커녕 "차선을 바꿔라" "저쪽으로 가야 하는데 잘못 들어섰다" 등 잔소리(nag)만 계속해 운전자를 헷갈리게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어프록시미팅을 소개한 미국 일간지 시카고트리뷴의 '기발한 신조어 10'에 '내기베이터'(nagivator)'가 포함됐다는 걸 보면 그렇다.
신조어가 탄생되는 데엔 나름대로 방식이 있다.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하고,사람을 위주로 하며,인터넷언어와 생활용어가 합쳐져 만들어지는 게 그것이다. 우리의 경우 '삼팔선 사오정'에 이어 '체온퇴직(36.5세 퇴직)''사고무친(40대는 고독하고 친구도 없다)'이란 말이 생겨난 것도 그렇고 무슨무슨 족이 많은 것만 봐도 그렇다.
내기베이터란 말이 나오기 전에 국내에선 '나토(NATO,no action talk only)'란 말이 유행했다. 사람이나 조직을 바꿔야 한다며 실컷 성토해놓곤 막상 필요한 행동을 하자면 뒤로 빠지는 사람,모임의 장(長)을 차지하기 위해 각종 공약을 내걸어놓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 등 행동 없이 말만 앞세우는 사람을 통칭했다.
내기베이터와 나토엔 공통분모가 있다. 실천력 없이 괜한 훈수나 말잔치로 정작 운전하는(일하는) 사람을 방해하거나 방향을 잘못 들어서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을 그르치지 않으려면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럴싸한 말에 넘어가지 않는 수밖에.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