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하면 코스피 1000선까지 밀릴 수도 있습니다."

2007년 중국 등 글로벌 경제 호황을 타고 코스피 지수도 훌쩍 뛰어올랐다. 1년만에 50% 오른 코스피 지수는 마침내 꿈의 숫자로만 여겨졌던 2000선을 돌파했다.

하지만 모두가 희망을 얘기하던 그때 "곧 위기가 온다"며 "코스피가 1000선까지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를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박경민 한가람투자자문 대표이사다.

그는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 대우투자자문 펀드매니저, 세이에셋자산운용의 주식운용본부장을 거쳤고, 당시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가치투자자 중 한사람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하지만 코스피지수 3000 얘기가 슬슬 나오던 당시 시장 분위기에서 그의 말은 외면당했다.

그럼에도 박 대표는 주식을 더 사려는 고객에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주식 비중을 줄일 것을 권했다. 추가 자금도 되도록 받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국제금융 중 파생옵션상품을 전공했던 그는 서브프라임 문제가 파생상품 시장 붕괴로 이어질 것을 예측했다.

박 대표는 "2006년 하반기부터 부동산시장이 이미 안 좋았고, 2007년 초반에도 부동산 관련 헷지펀드가 파산하는 등의 큰 위험신호가 있었음에도 시장은 이를 무시했다"며 "또 세이에셋자산운용에 있을 때에도 외국기관 투자자들이 헷지펀드를 어떻게 운용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거품이 무너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시장의 붕괴를 예측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세이에셋자산운용의 주식운용본부장을 지내던 1997년에는 한국 경제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주식 비중을 줄인 뒤 바닥에서 매수해 코스피 지수가 반토막이 날 때 오히려 50%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이렇게 외환위기 때 절묘한 매매 타이밍으로 오히려 높은 수익률을 올리자 명성이 치솟았다.

"운용을 잘 한다고 소문이 나니까 고객들이 직접 회사를 차리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더라구요. 이것도 인생의 전환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가람투자자문을 창업하게 됐죠."

그가 2000년 4월에 한가람투자자문을 설립할 당시만 해도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투자자문사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 개인 자금을 받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세이자산운용을 나오면서 스스로에게 기존 세이에셋의 고객은 한 사람도 빼내오지 말자는 다짐도 있었다.

"그래서 기관 위주로 영업을 하는데 당시 외환위기 이후 IT(정보기술) 버블이 터지면서 첫 자금 모으기가 참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과거 운용을 잘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 기관이 50억원 정도 맡겼는데, 시장대비 연 40~50%를 웃도는 수익률을 내면서 큰 성과를 냈죠."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높은 수익률을 눈여겨본 기관들이 자금을 맡기면서, 수탁고는 순조롭게 늘어났다. 2007년 3월말 6827억원이었던 운용자산은 올해 6월말 기준 1조2476억원으로 전체 투자자문사 중 4위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올해 10월 기준으로는 한층 늘어 1조5897억원에 달한다.

◆ 약세장에 강하다

한가람투자자문의 대표 펀드라고 할 수 있는 한 연기금 중소형주 펀드의 경우 2001년말 설정돼 지난 7월말까지 수익률이 543%에 달한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보다 무려 333%포인트나 웃돈 것이다. 2004년에는 국민연금 위탁운용사로 우수한 수익률을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강세장에서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하지는 않는다"면서 "대신 약세장에서 높은 방어력을 보이는 것이 수익률의 비법"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표적인 가치투자자로 이름이 높은 박 대표는 "무조건 저 PER(주가수익비율)에서 사거나 자산가치에만 초점을 맞추는 투자가 아니라 성장성까지 판단해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성장성이 높은 기업은 PER이 높고, 성장성이 낮은 기업은 PER도 낮더라는 것이다. 그는 성장성을 고려해 적정 PER을 추정하고 그에 비해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를 한다고 밝혔다.

"PER 4배 짜리도 안 사는 종목이 있고, 15배에도 사는 종목이 있습니다. 한반 평균 점수가 60점이라는 건 사실 별 의미 없는 겁니다. 1등이 몇점 맞았고, 누구인가가 중요하죠."

안정적인 수익률을 원하는 기관 고객의 특성상 집중투자는 지양한다고 밝혔다. 개인 고객들도 단기수익에 민감한 투자자보다는 장기적으로 꾸준한 성과를 내길 원하는 투자자들이 많다. 펀드의 종목당 비중도 최대 15%를 넘지 않는다.



◆ 10년 이상 경력의 펀드매니저 포진

한가람투자자문의 운용인력은 백운 투자책임자(CIO)를 비롯해 9명이다. 20년 가까운 경력을 갖춘 백운 상무를 비롯해, 키움증권과 동부증권 리서치팀장을 거친 장영수 펀드매니저 등 5명의 펀드매니저가 10~20년 정도의 경력을 갖고 있다. 밑으로는 7~8년 경력의 중견 매니저와 1, 2년차의 젊은 매니저들이 있다.

금융시장은 사이클이 반복되기 때문에 그런 순환기를 많이 경험한 사람이 운용도 잘할 수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지론이다.

"젊은 매니저들은 열심히 뛰어다니고 아이디어를 발굴해내는 능력도 뛰어납니다. 하지만 강세장만 경험해본 매니저는 장이 꺾일 때 절대 못 팝니다."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난 주니어 매니저와 리스크 관리에 능숙한 시니어 매니저가 함께 어우러져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또 앞으로 시장의 변동성이 굉장히 커지면서, 종목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봤다.

그는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변동성을 예측하기는 힘들다"면서 "그보다는 개별 기업을 보고 판단하는 게 더 확률이 높은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운용에 있어서는 '기업분석이 처음이자 끝'이기 때문에 한가람의 운용인력 중에서는 애널리스트 출신이 유독 많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어떤 기업에 투자를 할 때 내 돈을 투자해도 10년 동안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기업인지를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오너보다 그 기업을 더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깊게 기업을 분석한다"고 밝혔다.

한경닷컴 김다운 기자 kd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