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즈를 썼더라면 '아이폰 충격'을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트리즈가 제공하는 다차원 분석틀을 이용하면 애플이 내놓는 MP3 플레이어 제품이 갈 길은 결국 휴대폰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

창의적 문제해결 방법론인 트리즈를 이용해 불확실한 미래를 전망할 수는 없을까. 김효준 트리즈 아카데미 대표는 최근 한국트리즈학회와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코리아 트리즈 페스티벌 2010'에 참석,이 질문에 대해 "불확실하고 변화가 빠른 첨단 기술 분야에서 트리즈를 이용하면 미래 예측의 현실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며 아이폰의 사례를 들었다.

김 대표가 제시하는 기법은 '다차원 분석을 통한 미래 예측(TRIZ MP · TRIZ Multi-Predection)'이다. TRIZ MP는 예측 대상인 현재 시스템뿐만 아니라 법 제도 환경 등 '상위 시스템(Super System)'과 부품 기술 콘텐츠 등 '하위 시스템(Sub System)'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고려하는 기법이다. 김 대표는 "상위 시스템과 하위 시스템의 변화를 전망하면 예측 대상이 어느 정도나 변모하고 발전할지 그 '폭'을 상당히 좁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폰의 전신인 MP3 플레이어 경우 각각 상위 시스템은 유선 인터넷과 느슨한 저작권,하위 시스템은 소형 부품과 음악 콘텐츠였다. 상위 시스템은 무선 인터넷과 강화된 저작권으로,하위 시스템은 MEMS(미세전자기계시스템)와 실시간 동영상으로 각각 바뀌고 있었다. 김 대표는 "이 같은 변화 양상에서 인터넷과 각종 콘텐츠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휴대폰은 필연적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1997년 애플에 복귀해 MP3 플레이어 아이팟에 1조원 가까이 투자한 것은 이런 다차원 분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모두가 잡스에 대해 '미쳤다'고 했지만 그의 '도박'은 멋지게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트리즈와 경영의 접점 찾았다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트리즈를 통한 창의적 동반성장'이란 주제에 걸맞게 트리즈 기법의 적용 범위를 원래의 공학 과제에서 비즈니스 전반으로 넓힌 사례들이 잇따라 소개됐다. '세상을 바꾼 창의적 아이디어에 있는 일정한 패턴을 발견해 익히자'는 트리즈 기법이 점점 그 적용 대상을 넓히고 있음을 보여준 자리였다. 국내 정상급 트리즈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날 행사는 200여명의 참석자들이 강의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강연자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등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인 상상력과 창의성을 제고하기 위해 트리즈를 이용한 창조 경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경원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트리즈 보급이 10년 이상 진행되면서 대기업의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대학의 창의적 설계 교육,경영전략,공공부문 민원 해결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트리즈의 대표적인 특징인 '창의적인 유추 사고'와 '모순 해소'를 이용한 '비즈니스 트리즈'가 창조 경영의 방법론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인식이 확산되는 이유는 많은 기업 성공 사례가 품질을 높이면서 가격을 낮추거나,핵심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조직을 유연하게 하는 등 모순된 요구의 해결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구글의 검색 광고 전략을 대표적인 '모순 해소'의 예로 들었다. 구글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 야후 등 기존 검색엔진 업체들은 인터넷 배너 광고를 주 수익원으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배너 광고는 고객의 불만족을 높이고 서버의 부담을 늘려 비용을 증대시키는 등 부작용이 컸다. 구글은 특정 단어로 검색을 할 때만 광고를 보여주는 '검색 광고'를 도입,이 모순을 해결했다. 이 교수는 "구글의 전략은 트리즈의 '시간에 따른 분리' 원리와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이용자가 주로 검색엔진을 이용하는 순간과 실제로 광고가 나오는 순간을 각각 분리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에도 트리즈 유용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채택됐던 트리즈가 중소기업으로 확산되면서 나타난 성과들도 눈길을 끌었다. 송용원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트리즈의 산업 현장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창의적 설계'라는 명칭으로 트리즈 교육 과정을 개설했는데 성과가 좋다"며 "연구 · 개발(R&D)에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 없는 중소기업에 트리즈는 유용한 도구"라고 말했다.

경기도 시화공단에 입주해 있는 중소기업 한신로보체인의 김두진 사장은 이 학교 박사과정에 재학하면서 익힌 트리즈 기법을 이용,분진과 소음을 거의 내지 않아 클린룸에서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체인을 개발해 상용화했다. 한신로보체인이 이를 통해 늘린 신규 매출은 50억원에 달한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한국아이템개발이 이경원 교수와 함께 개발한 유인모기퇴치시스템 '블랙홀' 등 트리즈를 이용해 개발한 제품들이 전시돼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날 강연에 나선 트리즈 전문가들은 기업의 창의력을 어떻게 배양할 것인지에 대해 "기법 도입에 앞서 창의력을 위한 조건 마련이 중요하다"는 등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희석 KAIST 경영대학원 교수는 "피카소의 시대를 앞서가는 화풍은 야수파 거장 마티즈의 작품이 큰 영향을 끼쳤다"며 "창의 경영을 위한 전략적 감수성은 풍부한 경험과 교류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는 "성과를 내기 위한 무리한 경영기법 도입은 때때로 심각한 부작용만을 낳는다"며 "조직 자체의 창의적 역량을 먼저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