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순의 '여고졸업반'. 1975년 공전의 히트를 쳤던 가요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나도 흥얼거리던 노래였으니 말이다. 가끔 여고시절을 회상하는 40대 이상이라면 가장 먼저 추억할 노래이다. 꿈 많았던 여고를 졸업한 지 어느새 20년을 훌쩍 넘겨버렸다. 참된 인성교육과 교복 예쁘기로 소문난 광주 살레시오여고가 내 모교다. 까만 주름치마,리본 묶은 하얀 블라우스와 까만 재킷을 입은 살레시오 여고생들은 뭇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중3 때쯤 교복자율화가 됐지만 우리 학교 교복 입는 게 꿈이었던 친구들은 일부러 교복을 맞춰 입고 다니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공부에 지치기도 했지만 아름답고 유쾌한 추억이 더 많았던 시절이다. 이틀간 열렸던 체육대회에는 3학년도 참가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무슨 체육대회를 이틀씩이나 하냐'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맘껏 소리 지르고 땀 흘리면서 막힌 가슴이 탁 트였을 때 우린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본관 1층 복도 끝에 있었던 작은 성당은 입시를 앞둔 우리에게 또 얼마나 큰 위안이었던지.신자와 비신자를 떠나 모두에게 마음의 안식처였고 고된 하루를 되돌아보는 반성과 다짐의 장소이기도 했다. 1984년 5월,지금은 선종하신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광주를 방문해 직접 미사를 집전하신 적이 있다. 무등경기장에서 교황님을 환영하고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우린 '비바 빠빠(교황 만세)'를 목청껏 외쳤었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하루에 두 개씩 싸가던 도시락이 지겨워 상추와 쌈장,풋고추를 준비해 수돗가에서 바구니 가득 씻어 담아 선생님과 맛있는 상추쌈을 입이 터져라 먹기도 했다.

고3 땐 일요일에는 오후 2시까지 등교해 자율학습을 했다. 일요일 오전엔 개인적인 일도 보고 모자란 잠도 보충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요일 오전에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바로 '전국노래자랑'이다.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후다닥 버스 타고 가면 등교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서민들의 진솔한 삶과 애환이 오롯이 담겨 있는 전국노래자랑을 여고시절부터 좋아했던 걸 보면 아마도 그때부터 대중과 함께 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어딘가에 숨어 있었나 보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한 구절처럼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나(님)들'처럼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이 됐을 친구들이 그립다. 선생님들도 몇 분을 제외하곤 모두 은퇴하셨다. 종례시간에 라이오넬 리치의 '헬로'를 멋들어지게 불러주셨던 고3 때 담임선생님은 지금은 교감선생님이 되셨다.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기'를 여름방학 숙제로 내주셨던 국어선생님은 낭만적인 분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큰 딸을 버스정류장에서 늘 기다려주셨던 부모님과 가끔 먹던 포장마차의 우동은 또 얼마나 맛있었는지.요즘처럼 힘들 때면 친구들과 위로하고 의지하며 보냈던 여고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꿈 많았던 그때 바라보던 하늘은 지금보다 훨씬 더 높고 파랬다.

김유정 < 민주당 국회의원 kyj207@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