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구씨와 허씨 57년 동업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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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씨 이야기 허씨 이야기 | 전경일 지음 | 다빈치북스 | 263쪽 | 1만2000원
훗날 LG그룹의 2대 회장이 되는 구자경 럭키화학 전무와 금성사의 박승찬씨는 1967년 크게 대립각을 세웠다. 남미로 수출한 금성사의 라디오 케이스에서 모조리 불량이 발생해 수입처로부터 불만이 쇄도한 것.엄청난 액수의 피해보상까지 요구받았다.
럭키화학에서는 "도대체 물건을 어떻게 만들고,어디에 팔았기에 이런 문제가 터졌냐"며 흥분했다. 금성사 측에서도 "플라스틱 케이스를 만든 럭키화학이 제대로 충격시험을 하지 않았다"고 맞받아쳤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자는 먼저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고 판단,대안을 고심하다가 1968년 두 사람을 상대방의 회사에 부사장으로 교차 승진시켰다. 그 뒤 남미 현장으로 떠난 박승찬 럭키 부사장은 도착해서야 어느 쪽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현지 수입상이 라디오를 밀수꾼들에게 되넘겼는데 그들이 몰래 비행기로 운반하다가 밀림지역에 공중 낙하시킨 것이다. '인화(人和)'를 강조한 LG그룹의 전설적인 일화다.
결국 의가 상해 갈라서게 마련이라는 동업을 3대에 걸쳐 57년간 꾸려온 LG그룹과 GS그룹의 능성 구씨와 김해 허씨.두 집안은 기업의 연륜이 길지 않은 한국 기업사에서 동업 성공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구씨 이야기 허씨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본 듯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두 그룹의 반세기 동업 역사를 풀어낸 책이다. 한쪽은 다른 한쪽의 사업 수완을 믿고 땅을 팔아 종잣돈을 보탰고 결국 종잣돈은 몇 백만 배로 불어났다. 두 집안 모두 창업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신뢰와 이해,신용으로 기업을 키워냈다.
포목점 사업 등으로 경험을 쌓았던 구인회 창업자는 장인의 6촌벌 친척인 만석꾼 거부 허만정씨로부터 1946년 초 출자 제안을 받고 사돈의 3남인 허준구씨를 받아들인다. 이후 겹사돈 등으로 굳건히 친분을 쌓은 두 집안의 고급 인력들이 창업 초기 회사로 밀려오면서 화장품 제조와 유통,상사,화학 등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해 나갔다.
저자인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은 특히 확실한 역할 분담과 명확한 분배 철학을 동업의 성공 비결로 꼽는다. 구씨 일가는 대체로 사업 확장과 공장 건설,해외 수출 등 바깥살림을 맡았고 허씨 일가는 내수산업이나 재무와 같은 안살림 영업에 주력하며 동업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켰다는 것이다.
조선흥업사 시절부터 허씨 쪽 자본을 받아 사업을 키워나간 두 집안은 사업의 모양새가 갖춰지자 서로 낸 원금 크기에 따라 지분 비율을 정했다. 그리고 동업의 뼈대인 '65(구씨) 대 35(허씨)'를 유지했다. 흐릿한 셈법이나 남의 떡을 넘보는 욕심 대신 철저하게 자신의 지분을 관리하며 전체 파이를 키운 셈이다.
LG · GS그룹의 구체적인 발전사를 짚어보며 두 집안이 배출한 걸출한 경영인들의 삶을 좇아가는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안겨준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럭키화학에서는 "도대체 물건을 어떻게 만들고,어디에 팔았기에 이런 문제가 터졌냐"며 흥분했다. 금성사 측에서도 "플라스틱 케이스를 만든 럭키화학이 제대로 충격시험을 하지 않았다"고 맞받아쳤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자는 먼저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고 판단,대안을 고심하다가 1968년 두 사람을 상대방의 회사에 부사장으로 교차 승진시켰다. 그 뒤 남미 현장으로 떠난 박승찬 럭키 부사장은 도착해서야 어느 쪽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현지 수입상이 라디오를 밀수꾼들에게 되넘겼는데 그들이 몰래 비행기로 운반하다가 밀림지역에 공중 낙하시킨 것이다. '인화(人和)'를 강조한 LG그룹의 전설적인 일화다.
결국 의가 상해 갈라서게 마련이라는 동업을 3대에 걸쳐 57년간 꾸려온 LG그룹과 GS그룹의 능성 구씨와 김해 허씨.두 집안은 기업의 연륜이 길지 않은 한국 기업사에서 동업 성공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구씨 이야기 허씨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본 듯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두 그룹의 반세기 동업 역사를 풀어낸 책이다. 한쪽은 다른 한쪽의 사업 수완을 믿고 땅을 팔아 종잣돈을 보탰고 결국 종잣돈은 몇 백만 배로 불어났다. 두 집안 모두 창업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신뢰와 이해,신용으로 기업을 키워냈다.
포목점 사업 등으로 경험을 쌓았던 구인회 창업자는 장인의 6촌벌 친척인 만석꾼 거부 허만정씨로부터 1946년 초 출자 제안을 받고 사돈의 3남인 허준구씨를 받아들인다. 이후 겹사돈 등으로 굳건히 친분을 쌓은 두 집안의 고급 인력들이 창업 초기 회사로 밀려오면서 화장품 제조와 유통,상사,화학 등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해 나갔다.
저자인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은 특히 확실한 역할 분담과 명확한 분배 철학을 동업의 성공 비결로 꼽는다. 구씨 일가는 대체로 사업 확장과 공장 건설,해외 수출 등 바깥살림을 맡았고 허씨 일가는 내수산업이나 재무와 같은 안살림 영업에 주력하며 동업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켰다는 것이다.
조선흥업사 시절부터 허씨 쪽 자본을 받아 사업을 키워나간 두 집안은 사업의 모양새가 갖춰지자 서로 낸 원금 크기에 따라 지분 비율을 정했다. 그리고 동업의 뼈대인 '65(구씨) 대 35(허씨)'를 유지했다. 흐릿한 셈법이나 남의 떡을 넘보는 욕심 대신 철저하게 자신의 지분을 관리하며 전체 파이를 키운 셈이다.
LG · GS그룹의 구체적인 발전사를 짚어보며 두 집안이 배출한 걸출한 경영인들의 삶을 좇아가는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안겨준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