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1915~2000)는 '단군 이래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는 언어의 연금술사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된 뒤 65년간 자그마치 1000여편의 시를 썼다. 첫 시집 《화사집》부터 열다섯 번째 시집 《80 소년 떠돌이의 시》까지 줄곧 다른 세계를 모색한 데다 중년 이후엔 뭐든 주물러 시로 만드는 위력을 발휘했다.

1940년대 《화사집》 《귀촉도》에선 원죄의식과 원초적 생명력,50년대 《서정주 시선》에선 자기 성찰과 달관의 세계,60년대 《신라초》 《동천》에선 불교 사상에 입각한 인간 구원,70년대 《질마재 신화》에선 토속적인 농경사회와 문화,80년대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에선 역사,《안 잊히는 일들》에선 자신의 이력,90년대 산시(山詩)에선 세계의 자연을 다뤘다.

《미당 서정주시전집》(전 2권)은 이런 그의 시들을 한곳에 모은 것이다. '자화상'으로 시작되는 책은 시집이자 자서전이요,역사서다. 책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언어와 시기별로 뚜렷한 색채를 지닌 다채로운 작품에 빠져들게 하는 건 물론 '1900년대 한국'이란 격변의 세월을 견뎌낸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동천'과 '국화 옆에서'도 좋지만 광주학생운동에 연루됐던 10대 시절 이야기나 돈 안 되는 시를 쓰면서 남편과 아버지 노릇을 하느라 잠시도 쉴 틈 없이 직장인 노릇을 계속해야 했던 고달픔이 담긴 시들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광주학생사건 2차년도 주모로/ 학교에서 퇴학 당하고 감옥에 끌려간 내가/ 해어름에 돌아와 엎드려 절을 하자/ 저절로 떨어져내리던 아버지의 밥숟갈.'('아버지의 밥숟갈')

1956년 시간강사 시절 영양실조로 강의 중 쓰러진 일을 담아낸 '졸도'와 1968년 돈이 궁해 무슨무슨 문화상에 지망했다 떨어진 내용을 고백한 '김칫국만 또 마셔보기'는 유명 시인에다 대학교수라는,남보기엔 멀쩡한 직장과 직함이 있었음에도 실제론 고단하기 짝이 없던 형편을 드러냄으로써 그 시절 우리 모두 얼마나 궁핍했는지 보여준다.

마흔다섯을 '귀신이 와 서는 것이 보이는 나이/ 참대밭같이 참대밭 같이/ 겨울 마늘 낼 풍기며/ 처녀귀신들이 돌아와 서는 것이 보이는 나이/ 귀신을 기를 만큼 지긋치는 못해도/ 처녀 귀신하고 상면은 되는 나이'라고 전한 시인은 '진갑의 박사학위와 노모'에서 뒤늦게 받은 명예박사 학위를 고마워 하는 솔직함을 보인다.

'30년을 대학에서 강의하고도/ 환갑에도 그 흔한 박사도 못했는데/ 진갑에사 그게 하나 차례는 왔네만/ 내가 이미 중성도 넘게 여성적이 다 되어 그런지/ 숙명여자대학교란 데서 겨우 하나 그걸 얻게 되었네.…/ 난생 첨으로 한번 효도도 해볼 겸/ 보재기에 그 박사모자와 까운을 싸들고/ … 그걸 어머니께도 써 드리고 입혀드렸네.'

여든 살 넘어서도 새벽에 일어나 촛불을 켜고 시를 썼다는 대시인의 '곡(曲)'은 이 책이 시집인 동시에 잠언으로 읽히는 이유다. '곧장 가자 하면 갈 수 없는 벼랑 길도/ 굽어서 돌아가기면 갈 수 있는 이치를/ 겨울 굽은 난초잎에서 새삼스레 배우는 날/ 무력(無力)이여 무력이여/ 안으로 굽기만 하는 내 왼갖 무력이여/ 하기는 이 이무기 힘도 대견키사 하여라.'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