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은행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새롭게 투입한 돈은 사실상 제로(0)다. 기존 PF 대출 잔액마저 줄이고 있는 와중에 신규 수혈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라고 은행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처럼 부동산금융이 얼어붙은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시장 침체에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집값이 꺾이고 고령화와 인구 정체에 대한 우려로 집값 상승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자금이 흘러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와 더불어 선진화되지 못한 부동산금융 시스템도 자금 경색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부동산 투자자금을 신규 금융상품으로 만들어 유동화시키는 구조가 정착되지 못하다 보니 집값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천수답 시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무늬만 PF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은 "한국의 PF 대출은 제대로 된 PF라고 할 수 없다"며 "기업의 담보나 신용을 바탕으로 돈을 빌려주는 기업대출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PF는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보고 돈을 투입하는 금융기법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수익성이나 미래 현금흐름 등이 PF 대출의 기본 잣대가 아니다. 은행들은 시행사(개발업체)에 지급보증을 서 준 시공사(건설사)를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공세일 산업은행 PF센터장은 "한국의 경우 PF 대출은 건설사 신용대출에 가깝다"며 "한국에서 부동산 PF라고 부르는 것은 외국에선 PF로 쳐 주지도 않는다"고 진단했다. 부동산가격이 뛸 때 은행들은 건설회사의 지급보증 능력조차 심사하지 않는다. 짓기만 하면 분양이 되고 적잖은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고꾸라지면 보증을 선 건설회사마저 무너질 수 있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대체상품 안착 "쉽지 않네"

하지만 이 같은 PF 대출을 대체할 만한 금융상품을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프로젝트금융본부장은 "대형 프로젝트나 현금흐름이 발생하는 상가 호텔 골프리조트 등은 부동산펀드 · 리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동화할 수 있지만 주택건설 자금 조달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매각차익이나 운영수익 발생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시장에선 새로운 개발 방식이 다양하게 제안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김 본부장은 "시공사가 지급보증을 서는 대신 분양률을 보증하는 '책임분양' 형태가 올해 새로 등장하는 등 여러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정장진 KB부동산신탁 팀장은 "보험에 재보험을 들 듯 여러 사업장을 묶어 유동화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규제 완화 검토해야

전문가들은 부동산 경기를 살리고 앞으로 개발자금 조달 시장의 새판 짜기를 돕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부동산금융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토해양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 부동산금융 시장 규제를 교통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중장기적으로 규제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 사장은 "부동산펀드의 최소 자기자본금(현재 70억원)을 더 낮춘다거나 투자 대상을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않고 운영되는 블라인드 펀드의 인가를 늘리는 등의 시도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 상황이 호전될 경우 '묻지마 투자'로 이어질 공산이 큰 만큼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