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8년 미국 측 병력은 자유주의 진영인 남베트남의 정규군 85만명과 미군 54만명을 포함,183만명에 달했다. 반면 공산주의 진영의 북베트남 군대는 중국군을 포함해도 52만명에 불과했다. 화력 역시 미국 측이 훨씬 강했다. 북베트남은 제대로 된 전투기 한 대 없었지만 미군은 B-52 폭격기를 비롯한 수천 대의 전투기와 헬리콥터를 전장에 투입했다. 인도차이나반도에 퍼부은 폭탄은 공식집계만 800만t.제2차 세계대전에서 참전국 전체가 사용한 양의 3배나 됐다.

그런데도 미국은 졌다. 미국만이 아니다. 1954년 북베트남은 20세기 최강국의 하나인 프랑스도 물리쳤다. 프랑스는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경험했다. 1979년엔 중국도 당했다. 당시 중국은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해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우려, 5만명의 군대를 동원했지만 베트남의 선제공격에 밀려 결국 철군했다.

베트남이 강대국을 상대로 연승을 거둔 것은 전략과 철저한 준비의 결과였다. 그 전략을 이끈 사람은 바로 '붉은 나폴레옹'으로 불리는 베트남의 국민영웅 보 구엔 지압 장군이다. 국부 호치민은 베트남의 독립항쟁을 지도했지만 전쟁의 대부분은 지압 장군이 이끌었다.


《3불전략(3不戰略)》은 지압 장군의 승리 비결을 세계 유수의 전쟁 사례 및 비즈니스 세계를 뒤흔든 마케팅 사례와 함께 녹여낸 책이다. 그 핵심 내용은 3불(不),즉 세 가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지압 장군은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처럼 강한 군대와 싸우면서 우리가 한 건 별로 없습니다. 다만 세 가지를 하지 않았어요. 우선 적들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았고,그들이 싸우고 싶어하는 장소에서 전투를 치르지 않았으며,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싸웠습니다. "

이를 간략하게 줄여 개념화하면 회피전략,우회전략,혁파전략이다. 저자는 이를 비즈니스 전쟁과 접목해 회피전략은 시점 차별화,우회전략은 시장 차별화,혁파전략은 사업 차별화로 재구성해 마케팅 전쟁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가령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도 회피전략(시간지연 전략)의 결과였다. 밤마다 일본 함대가 조선 함대를 공격하고 도망갔지만 이순신은 눈에 보이는 적만 격퇴할 뿐 따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물살이 빠른 울돌목에 일본 함대가 걸려들기까지 때가 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모토로라의 아성을 무너뜨린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사업도 이런 전략으로 성공했다. 삼성은 1983년 무선개발실을 설치하면서 휴대전화사업을 시작했지만 한국 시장을 선점한 모토로라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애니콜이라는 고유 브랜드를 출시한 삼성의 최우선 과제는 통화품질 향상.삼성은 통화품질이나 내구성 등 모든 면에서 자신할 수 있을 때까지 브랜드를 시장에 노출하지 않았다. 마침내 1994년 '한국 지형에 강한 휴대전화'라는 콘셉트와 함께 신제품을 내놓자 애니콜에 대한 소비자 인식은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 애니콜은 출시 1년여 만에 모토로라를 앞질렀고,LG전자까지 가세해 모토로라의 시장점유율은 급락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인내심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강자들과 싸울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목표가 정해지면 주어진 방향대로 빨리 실행하도록 닥달한다"고 꼬집는다. 사소한 전쟁을 치르느라 기력을 소모하는 대신 적절한 순간을 위해 에너지를 아껴두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명확히 사고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회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는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의 행군이다. 공중파 방송이 할 수 없는 영역을 구축해 대박을 낸 '슈퍼스타K'나 대기업으로선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시장을 공략한 주부 한경희씨의 한경희생활과학이 이런 전략으로 성공을 거뒀다.

3불전략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혁파전략이다. 전쟁이든 경쟁이든 한 번 승리한 방법을 다시 쓰면 실패하기 때문이다. 지압 장군은 병력과 화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미군과의 정면 충돌은 철저히 피했다. 대신 전쟁의 개념을 바꿨다. 전쟁은 군인만 하는 것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도록 했다. 전투조직도 혁신해 북베트남 주력군 외에 성 단위의 지방군,마을 단위의 게릴라 등 셋으로 나눴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미군을 교란하고 습격했다.

저자는 그래서 "한 번 승리한 방법은 바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라"고 강조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수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때 '파는 시장'을 '빌려주는 시장'으로 바꾼 웅진코웨이의 성공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동서고금의 전쟁사와 마케팅 현장을 넘나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