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의 첫날.서울 세종로에 있는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시의원들이 여 · 야로 나뉘어 무력충돌을 벌이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빚어졌다.

이날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상대로 시정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날이었지만 오전 9시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은 '무상급식 조례안'을 이날 상정안건에 포함한다고 통보했다. 한나라당 소속의 한 의원은"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다를 게 없는 비겁한 기습공격"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소수당으로 밀려난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본회의 시작 전부터 민주당의 단독처리를 막기 위해 본회의장 단상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오후 2시,적막감이 감돌던 본회의장에 민주당 의원들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수적 우세를 무기로 단상을 향한 인해(人海)전술이 전개됐다. 고성과 비명,몸싸움과 거친 숨소리가 20여분간 본회의장을 메웠다. 단상에 있던 서류 뭉치도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1000만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민의의 전당'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여와 야만 바뀌었을 뿐,막장 드라마를 뺨치는 풍경은 여의도 국회보다 한 술 더 뜨는 듯했다.

허광태 의장의 중재로 오후 2시50분부터 여 · 야 대표단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초 · 중학교 자녀들의 끼니를 해결한다는 명분의 '무상급식 조례안'은 이날 밤 결국 민주당의 단독처리로 시의회를 통과했다. 여 · 야가 한목소리로 외쳤던 '대화와 타협,끈기와 인내,의회주의 기본원칙'은 오간 데 없었다. 이런 사이 의장석 뒤편에 놓여 있던 태극기는 의원 간 몸싸움 속에서 나뒹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다수당의 횡포라고 소리쳤고,몇몇 여성 의원들은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다수결 원칙'을 내세워 "한나라당이 의회주의를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후 9시께 민주당의 단독처리로 무상급식 조례안은 통과됐다. 부자까지 다 무상급식을 할 수 없다는 서울시와 차별 없는 학교급식을 강조하는 민주당의 대립에 대화와 타협,진정한 의회주의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였다. 조례안을 강행 처리한 민주당 의원들 뒤편에 태극기가 무참히 밟혀 있었다.

강황식 사회부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