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등 채권단이 현대그룹에 6일까지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에 응할 것을 통보했다. 현대건설 인수자금 중 논란이 불거진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예치금 1조2000억원과 관련,대출계약서를 7일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한 데 이어 현대그룹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관측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권단은 현대그룹에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에 응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그룹과의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은 이미 처리됐어야 했던 일"이라며 "이번에도 거부하면 별도 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공동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 법원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현대그룹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더라도 이로 인해 현대건설 인수 자격이 상실되는 등의 영향은 없다고 채권단은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건설 매각을 주도하는 외환은행을 향해 압박 수위를 높였다. 현대차그룹은 "외환은행이 현대그룹에 1차 자료제출 시한인 12월7일 이후 재차 5일간의 유예기간을 더 주는 것을 검토하는 것은 민법 제544조와 대법원 판례에 위반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현대차그룹은 보도자료를 통해 "현대그룹이 서류를 제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유예기간을 더주는 것은 따져볼 필요도 없이 불법조치임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민법 544조는 계약 당사자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해 그 이행을 최고(어떤 행위를 할 것을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통지)하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을 해제해야 한다. 그러나 채무자가 미리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최고를 요하지 아니하고 그 즉시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2009년 9월28일 선고를 통해 "계약에 있어서 당사자의 일방이 미리 자기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명한 때에는 상대방은 이행의 최고 없이 바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현대차그룹은 "일각에서 현대그룹이 나티시스은행과 모종의 '입맞추기'를 준비하기 위해 시간벌이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는 의혹에 외환은행은 유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차그룹은 법인예금 인출 및 직원 급여계좌 이전 등을 통해 외환은행을 직접 압박하고 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예금 인출은 통상적인 거래이며 급여계좌 변경은 (회사) 지시가 아니라 일부 직원들 사이에 그 같은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한 이의제기 금지 등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이날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그룹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매각주관사인 외환은행의 예금을 일방적으로 인출하고,일부 언론이 보도한 대로 현대그룹의 재무적 투자자인 동양종합금융증권에 거래 단절을 위협하는 등의 방법으로 압력을 가한 것이 사실이라면 입찰 방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현재로선 당국이 (현대건설 매각 문제를 직접 확인할)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채권단과 매수자가 자율적으로 협의해 해결할 문제"라며 "당국이 아무 때나 들어갈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김수언/이태훈/장창민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