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는 위키 계열 인터넷 사이트의 연장선에 있다. 불특정 다수가 집단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무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위키리크스 파문을 계기로 위키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위키피디아 등 위키 시리즈 사이트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시작은 위키피디아(wikipedia.org)에서 비롯됐다.

◆세계,위키 세상에 빠지다

"이렇게 따분할 수가…." 1999년 미 뉴욕증시 주식중개인이던 지미 웨일스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뒤지다가 화가 났다. 양은 방대하나 오래된 정보가 많았고 틀린 내용도 수두룩했다. 순간 '인터넷에 백과사전을 만들면 어떨까'라고 생각한 그는 온라인 백과사전 운영업체인 누피디아(Nupedia)를 그해 설립했다. 재미를 못 봤다. 각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가진 전문가를 고용,지식을 정리하고 업데이트했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당시 인터넷에 불던 개방형 소프트웨어(open source software) 바람이 그에게 영감(靈感)을 줬다. "검토와 승인 과정을 생략하고 누구라도 글을 올리고 편집할 수 있도록 하자." 누피디아를 폐쇄하고 모든 네티즌이 정보 항목을 추가할 수 있고,회사는 정보가 어떻게 바뀌든 상관하지 않는 사이트를 새로 만들었다. '위키(wiki)'라는 방식이었다. 2001년 웹 2.0의 대표격인 위키피디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위키는 웨일스의 부모가 살던 하와이의 원주민 말로 '빨리'라는 뜻.여러 사람의 손을 빌어 백과사전을 '빨리'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시장 반응은 2주 만에 나타났다. 2년간 12만달러를 투입해 만들어 올린 누피디아 정보(24개 항목)보다 더 많은 항목의 정보가 사이트에 올라왔다. 출범 한 달이 되자 200개의 항목이 만들어졌고 1년이 지난 후에는 총 항목 수가 1만8000개로 늘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곧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점이 통한 것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덮게 한 위키피디아는 사전이 오프라인 출판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흐름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키피디아의 가치는 30억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위키피디아의 성공으로 자신을 얻은 웨일스는 2003년 6월 미국 플로리다 주 세인트피터즈버그에 위키미디어 재단을 세우고 위키문헌(wikisource),위키인용집(wikiquote),위키책(wikibooks) 등 13개의 사이트를 추가로 개설했다. 모두 비영리 방식으로 운영되며 누구든지 사이트의 '편집'을 눌러서 내용을 고칠 수 있는 대상을 확대했다.

한국에서는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지식인과 다음의 지식을 통해 집단지성의 장이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사이트에 올라온 잘못된 내용을 본인밖에 수정할 수 없다는 점과 추가 댓글이 많아질 경우 전부 읽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본격적인 '참여 · 개방형'뉴스사이트도 이미 등장했다. "한 마디가 뉴스를 만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지난 2월 출범한 위키트리다. 누구나 뉴스를 직접 생산해 올리고 수정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 사이트라는 점에서 개방과 참여,정보의 수평적 공유가 가능하다. 위키리크스,위키미디어 등 위키 계열 미디어들이 표방하는 '권위의 타파'와도 맥이 닿는다.

'위키'식 국어사전도 곧 나온다. 이용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한국어 웹사전이다. 국립국어원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어휘를 많이 담은 100만어휘 규모의 국어사전인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가칭)을 만들어 2012년께 서비스할 예정이다. 정부도 위키 방식을 벤치마킹한 정책제안 사이트를 선보였다. 미래기획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2008년 시민들이 국가 정책 수립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웹사이트 '드림코리아'를 개설했다.

◆익명성의 폐해 극복이 과제

전통과 권위를 무너뜨린 집단지성은 약점이 있다. 익명성을 악용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거짓 정보를 올리는 등 사이버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사이버 반달리즘(Vandalism)'이 대두되고 있는 것.위키 세상에선 실명을 밝히지 않고 정보를 올리고 수정할 수 있어 이 과정에서 희생양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컨대 영국 BBC는 최근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로마 교황청이 위키피디아의 편집을 조작한다"고 폭로했다. 미국의 적국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항목에 대한 악의적 편집과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 IRA지도자의 살인사건 연루혐의 내용을 지운 컴퓨터의 IP가 각각 CIA와 교황청의 컴퓨터인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요지다.

폐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위키 세상은 확대될 전망이다. 집단지성이 만들어낼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도 풍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협업이 '위키노믹스(wiki+economics)'로 불리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도 부상한다. 위키노믹스는 기업이 독점했던 정보를 공개하고 온라인상으로 외부의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협업 경제를 말한다. 과거엔 경제의 주역이 뛰어난 소수였다면 위키노믹스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들이다. 위키노믹스를 저술한 앤서니 윌리엄스는 "위키노믹스의 핵심 메시지는 내부 인재에만 의존하지 말고 아마추어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들을 널리 활용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