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조직의 정보 독점과 권력 남용을 막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줄리안 어샌지 · 사진)

"실정법을 위반해 세계 평화질서를 파괴하는 범법자일 뿐이다. "(미국 국무부)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위키리크스의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電文) 공개 탓이다. 미국은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과 대테러조직까지 동원해 '입막음'에 나섰다. 문건에 드러난 노골적인 정보 수집 때문에 '미국의 본질'이 드러났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은밀한 사생활이 까발려진 각국의 외교관들은 당혹과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어샌지는 여전히 팔팔하다. "간첩죄를 적용하겠다"며 벼르는 미국을 조롱하듯 도피 중에도 인터뷰를 하면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소재를 알고 있다"는 영국 경찰의 발표는 되레 "일부러 봐주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키웠다. 이 와중에 중국과 중동 등을 중심으로 이 사이트에 접속을 차단하는 국가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체포하라" vs "잡아봐라"

문건 공개 후폭풍에 휩싸인 대다수 국가들은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범죄'로 규정한다. 공개 문건에는 거물급 인사들의 은밀한 사생활과 뇌물수수 등 부패 의혹까지 거론돼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를 '마피아' 조직과 연결된 '부패의 핵'으로 보는 미국 외교관들의 보고 내용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섹스파티 탐닉,뇌물 수수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나서면서 '체포가 임박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경찰이 그가 영국 남부지역 모처에 은신해 있다고 발표한 데 이어 위키리크스 파일이 저장됐다는 장소도 공개됐다. 2일 CNN은 어샌지가 기밀파일을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의 '화이트마운틴' 핵벙커에 숨겨뒀다고 보도했다. 이곳은 영화 '007'에서 소개됐던 비밀장소다. 이 벙커는 50㎝ 두께의 철문 등 이중삼중의 보안시설로 보호돼 있다.

하지만 어샌지는 3일 타임 편집장 리처드 스텐글과 화상전화 인터뷰에서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그는 "현재 하루 80여건의 제보를 접수하고 있으며,적절한 시기에 공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대판 로빈후드? 위험한 교란자?

어샌지는 지난 8월 스웨덴 여성 2명을 성폭행,성추행했다는 혐의로 도망자 신세다. 그러나 어샌지를 잡기 위해 정보당국이 만든 '명분'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현대판 로빈후드'란 추앙 분위기도 없지 않다. '글로벌 정보민주화'를 실현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그는 '올해의 인물'로도 부각했다. 3일 타임에 따르면 그는 2010년의 지구촌 뉴스메이커 선정 온라인 투표에서 2위에 올라있다.

호주 출신인 어샌지는 16세인 1987년 멘닥스(Mendax)라는 ID로 해킹을 시작한 뒤 본격적인 해커 생활에 천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18세에 결혼했으나 1991년 해킹 혐의로 호주 경찰에 체포되면서 부인과 결별했다.

일부에선 위키리크스의 '폭로투쟁' 이면에 막강한 비호세력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킨토 루카스 에콰도르 외무차관은 지난달 29일 인터넷 사이트 에콰도린메디아토에 "우리는 어샌지에게 거처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망명 수용 입장까지 시사했다. 한편 위키리크스는 2일 복수의 디도스(DDoS) 공격을 받아 웹사이트 서비스가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