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포르투갈과 아일랜드 국채를 대거 사들이면서 7개월 만에 채권시장에 다시 개입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국가들의 재정위기 전염 차단을 위해 가장 강력한 조치를 동원한 것으로 평가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 "ECB가 전날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의 국채 1억유로어치를 매입했다"며 "ECB가 가장 공격적인 시장개입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국채 금리가 내리고 유로화 가치는 오르는 등 유럽 금융시장이 일단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일랜드 10년물 국채 금리는 전날에 비해 0.25%포인트 정도 떨어진 8.30%,포르투갈 국채 금리는 0.5%포인트 하락한 5.82%로 내려갔다.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도 전날의 유로당 1.30달러대에서 1.32달러대로 올라섰다.

이에 앞서 ECB는 2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정례 금융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로 동결하고 유동성 확대 정책인 대출 프로그램을 내년 1분기까지 유지하는 등 출구전략을 늦추기로 결정했다.

회의가 끝난 후 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각 유로존 국가들은 투자자들에게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EU의 구제금융기금 규모를 늘릴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ECB는 필요할 경우 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며 "채권 매입 프로그램도 지속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ECB의 채권시장 개입은 일종의 '깜짝 쇼'로 비쳐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줄리안 칼로우 바클레이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조치는 예정된 개입보다 훨씬 전술적이었다"며 "아일랜드,포르투갈과 다른 유럽 국가들 사이에 방화벽을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날 ECB의 채권 매입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캐롤라인 앳킨슨 IMF 대외관계담당 이사는 "트리셰 총재가 유로존의 금융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겠다고 강조한 것은 매우 중요한 언급이었다"며 "IMF도 그리스 대출금의 만기 연장에 기꺼이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ECB가 스페인 국채를 사지 않은 데 불만을 표시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같은 본격적인 양적완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에볼루션 시큐리티의 게리 젠킨스 채권담당 이사는 "ECB가 1조~2조유로 규모의 유로화 채권을 사는 방식으로 '진정한 양적완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며 "이는 즉각 방화벽을 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FT는 "ECB가 시장의 유동성을 넘쳐나게 하고 있다"는 밀란 미클로스 슬로바키아 재무장관의 비판을 인용하면서 ECB의 채권 매입 규모와 대상은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3개월 안에 추가로 강등할 수 있다고 밝혔다. S&P는 유럽연합(EU)이 2013년부터 채무조정 때 민간 투자자의 손실을 강제할 수 있는 '유로안정화기구(ESM)' 출범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함에 따라 그리스의 등급 강등을 검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S&P는 그리스가 ESM을 통해 차입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