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신약은 화학 신약과 비교할 때 연구 생산성 등 투자 효율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녹십자를 포함한 전 세계 제약사들이 바이오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

허은철 녹십자 부사장(사진)은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녹십자가 진행 중인 연구 · 개발(R&D) 과제의 70% 이상이 바이오 의약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허 부사장은 바이오 분야에서 녹십자의 강점으로 40년 가까운 경험과 기술력을 꼽았다. 1970년대부터 사람 오줌 성분을 채취해 혈전용해제를 만든 것이나,1990년 초 남보다 한발 앞서 유전자 재조합 분야 연구 · 개발에 착수한 것이 현재 바이오 부문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설명이다.

바이오 분야 연구 · 개발은 이미 상업적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7월 국내 시판 허가를 따낸 혈우병 치료제 '그린진F'가 대표적이다. 동물성 성분을 사용하지 않고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만든 치료제를 제품화한 곳은 전 세계를 통틀어 글로벌 제약사인 박스터와 화이자에 이어 녹십자가 세 번째다.

신약개발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고 있는 허 부사장은 "국내 시판 허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며 "'그린진F'는 국내 제약사들이 번번이 실패했던 글로벌시장의 문턱을 넘기 위한 녹십자의 전략상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치료제가 몇 백억원에 불과한 국내 희귀의약품 시장이 아니라 개발 초기부터 56억달러(2008년 기준) 규모의 글로벌시장을 정조준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허 부사장은 "현재 미국 유럽 등에서 임상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1~2상이 면제되기 때문에 오는 2014년께를 출시 목표 시점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창업주인 고(故) 허영섭 회장의 아들인 허 부사장은 세계 제약업계의 바이오산업 현황 및 트렌드,향후 전망까지 줄줄 꿰고 있다. 제약업계 2세 경영인 중 유일하게 CTO를 맡고 있는 그는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식품공학 박사학위를 땄다. 바이오 분야가 주 전공인 허 부사장은 백신회사 이미지가 강한 녹십자를 글로벌 바이오테크 회사로 탈바꿈시키는 게 꿈이다.

그는 "백신도 크게 분류하면 바이오 영역인 데다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과 R&D 투자 비중을 감안할 때 녹십자는 이미 바이오 회사"라고 말했다.

허 부사장은 그러나 국내 대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바이오 시밀러(바이오 복제약) 시장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나타냈다. 그는 "블록버스터급 바이오 신약들이 줄줄이 특허가 만료되면서 바이오 복제약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대규모 투자 등으로 경쟁자가 많은 데다 미국 등의 경우 인 · 허가 기준을 강화해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허 부사장이 진두지휘하는 신약개발팀이 바이오 시밀러가 아닌 '바이오베터' 쪽에 R&D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녹십자는 현재 2013년 이후 순차적 출시를 목표로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 등 3개 바이오베터를개발 중이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


◆ 바이오베터

biobetter.재조합 DNA 기술을 응용해 만든 바이오 신약의 효능 등을 개선시킨 바이오 의약품.바이오 시밀러가 기존 바이오 신약을 복제한 것이라면 바이오베터는 효능,투여 횟수 등을 차별화한 것이 특징이다. 특허권을 회피할 수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높은 시장 경쟁력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