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예술은 겉에 드러난 모습보다 내면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질이 결정된다고 봐요. 관람객들에게 영상예술 세계가 생물처럼 살아움직인다는 것을 깨우쳐줄 겁니다. "

미국 사운드 아트의 선구자 크리스찬 마클레이(55 · 사진)가 오는 9일부터 내년 2월13일까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첫 개인전을 갖기 위해 6일 방한했다.

그는 "영상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작가에게는 언제나 참신한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각과 청각의 결합을 통해 공감각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개척한 마클레이는 LP판과 턴테이블을 이용한 디제잉 퍼포먼스부터 소리를 물질화시킨 오브제 작품까지 '소리를 보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수천편의 영화에서 발췌한 장면들을 소리 중심으로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담아낸 근작 '시계'와 '전화''비디오 사중주' 등을 소개한다.

그는 "영화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캡처해 새로운 작품으로 작업할 때도 가장 중요한 건 소리의 연결을 잡아내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초 뉴욕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서 DJ가 턴테이블을 사용해 소리를 편집하는 '턴테이블이즘'으로 데뷔한 그는 1995년 영상작품 '전화'를 통해 유명세를 탔다. 올해는 미국 휘트니미술관과 영국 화이트 큐브에서 잇달아 개인전을 열었다.

7분 30초짜리 영상작품'전화'로 사운드 아트의 최고 지위에 오른 그는 지난 10월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는 '시계'를 들고 나왔다. 24시간짜리 영상 작품이었다.

"28개월 동안 영화 3000~4000편에서 시계 장면을 편집해 시간의 개념을 탐구했어요. '올드 보이' 등 한국 영화는 물론 흑백영화,멜로 드라마,액션영화 등 무수한 시계 장면들을 연결해 하루 24시간을 재현했거든요. 서울에 출품된 작품은 런던 작품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

그의 1995년 작 '전화' 역시 영화 속의 통화 장면을 '소리의 조각'으로 연결한 작품이다.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기 소리와 이에 응답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통해 소통 매체로서 전화의 의미와 소리를 보는 경험을 유도한다. '비디오 사중주'는 700개가 넘는 영화필름을 편집해 가로 12m,세로 2.25m의 화면을 4개로 나누고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음향이 어떻게 연속적으로 움직이는가를 보여준다.

수십년간의 작가 생활은 소리와의 싸움이었다. "'눈으로 본다'고만 생각하는 영상을 귀로 들으면서 시각과 청각이라는 감각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이죠.디지털과 인터넷,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시대에 제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를 유도하는 정보기술과 영화를 만난 것에 감사해야죠."

작가는 오는 11일 오후 4시 리움 강당에서 관람객들과 대화 시간을 갖는다. 관람료 어른 3000원.(02)2014-655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