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과 청더를 잇는 징청고속도로에서 왕징으로 빠지면 최고가 아파트인 동후완이 나타난다. ㎡당 2만~3만위안(340만~510만원)이라는 분양 안내판이 6개월째 걸려 있다. "분양이 빨리 마무리되지 않으면 다음 공사 대금을 마련할 수가 없는데 큰일입니다. " 텅 빈 사무실에 앉아있는 아파트 시공사 관계자의 표정은 온통 걱정스럽기만 하다. 정부가 부동산개발 업체에 대한 대출을 대폭 규제,돈줄이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공행진하던 부동산경기는 꺾이고 있지만 물가는 급등세다. 지난 10월 4.4%를 기록한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1월 5%에 육박했을 것"(중국 국제금융공사)으로 추정된다. "식품값은 정부가 비축물량을 긴급히 방출해 어느 정도 상승세가 꺾였지만 원자재가격이 뛰면서 공산품값이 크게 오를 것 같다"는 게 국제금융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유동성을 거둬들여라" 비상

중국 경제가 물가와 자산버블에 발목을 잡혔다. 소비자물가는 급등하고,자산버블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금리를 한 차례 올렸지만 다시 금리인상을 시도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리자오밍 홍콩 중국경제연구소 연구원)이란 전망도 나온다. 경제성장률이 뚝뚝 떨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올 들어 1분기 경제성장률은 11.9%였지만 2분기 10.3%, 3분기 9.6%로 분기마다 1%포인트가량 하락 중이다. "4분기 예상치는 8.6%"(왕이밍 발전개혁위원회 거시경제연구원 부원장)로 추정된다. "성장률이 8% 밑으로 내려간다면 이는 경착륙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다"(위용딩 사회과학원 세계정치경제연구소 고문)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고 보면 인플레 억제를 위한 강공을 계속 펼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물가를 방치하기도 어렵다. 특히 식품가격이 물가 상승을 주도하면서 서민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부국(富國)에서 부민(富民)으로의 전환을 모토로 다음 달부터 시행될 12차 5개년 계획의 기본 이념과 정반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부동산가격 상승까지 겹치면서 자산버블에 대한 우려도 급증하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모기지론의 이자율 상향 등 부동산 대출규제 △지난 10월 금리인상 △올 들어 다섯 차례 은행 지급준비율 인상을 실시했으나 물가는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홍콩 경제학자인 엔디 시에는 "내년 중반이 되면 중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넘어설 것이며 이는 지금보다 최소 4%포인트 이상 예금금리를 올려야 마이너스 금리가 안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궈(過)'가 아닌 '둬(多)'가 문제

2007년 중국이 긴축에 들어갔을 때는 '궈(過 · 지나침)'가 키워드였다. 당시 경제성장률은 13.0%로 2003년 이후 5년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계속 오름세를 탔다. 2000년부터 8년간 초호황장세가 이어졌다. 2007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4.8%는 경기과열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올해의 상황은 다르다. 경착륙을 걱정해야 할 상황인데 물가는 오른다. 이는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2009년 초부터 약 19조위안의 돈을 풀어 경기부양에 나선 결과다.

가전제품을 사거나 자동차를 새것으로 바꾸면 보조금을 주는 가전하향이나 이구환신 등 각종 경기부양책으로 돈이 풀렸다. 유동성이 지나치게 늘어나며 물가는 자연스럽게 오름세를 탔다. 경기과열로 인한 궈(過)가 아니라 돈이 많이 풀린 '둬(多 · 많음)'가 올해 중국 물가상승의 원인이다.

중국 정부가 공격적으로 물가관리를 하는 게 부담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동성 공급으로 지탱해온 중국 경제에 돈줄이 끊긴다면 경기가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양평섭 대외경제연구소 베이징사무소장).유동성을 거둬들이자니 경착륙이 우려되고,느슨한 통화정책을 쓰자니 인플레가 기승을 부릴 게 분명하다. 중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