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9월3일 밤 경주 불국사 경내에서 아찔한 일이 벌어졌다. 도굴범들이 석가탑 사리장엄구를 훔쳐가려고 2층 몸돌(탑신)을 들어올리다가 일부를 훼손한 것이다. '정제된 아름다움의 극치'로 평가되는 국보 21호의 석탑에 큰 문제가 생길 뻔했는데도 처음엔 이를 까맣게 몰랐다. 도굴범들은 이틀 후인 5일 밤에도 다시 담을 넘었다. 이번엔 3층 몸돌을 들어올리려다 실패했다.

불국사 측은 6일에야 탑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문화재청에 연락했다. 다음날 '얼마전 발생한 지진으로 석가탑이 붕괴위험에 놓였다'는 엉터리 발표가 나왔다. 결국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 도굴범 7명을 잡고나서야 전모가 밝혀지게 됐다.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으나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탑을 해체복원하다가 2층 사리공(舍利孔)에서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발견한 것.참 묘한 인연이라 할 만하다.

석가탑은 신라 경덕왕 10년(751년) 불국사 창건 때 세워졌다. 건립연대가 분명한데다 '아사달과 아사녀' 스토리가 깃들어 있어 가치가 더 높다. 아사녀는 남편 아사달이 석가탑을 완성하면 탑 그림자가 영지(影池)에 비친다는 말을 듣고 애타게 기다렸으나 끝내 비치지 않자 연못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래서 무영탑(無影塔)으로도 불린다. 이 전설은 현진건의 소설 '무영탑'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정기안전점검을 하다 석가탑 기단석에 금이 간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길이가 132㎝,최대폭 5㎜의 적지 않은 균열이다. 문화재연구소 측은 1200여년이 지나면서 석재가 약화된 데다 몸돌 무게를 이기지 못해 균열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발생 부위가 탑 전체를 떠받치는 지점이어서 해체보수를 검토 중이란다.

석가탑은 건립 이후 한 번도 보수를 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돈 적도 있다. 그만큼 신비롭고 완벽한 탑이란 의미였을 게다. 하지만 다라니경과 함께 나온 탑 중수기(重修記)에서 1024년과 1038년 지진을 맞아 대규모 중수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문화재는 손대지 않고 원형대로 보존하는 게 최선이지만 심각한 손상 가능성이 있다면 신속히 보수하는 게 좋다. 다만 66년 같은 '졸속'이 되풀이돼선 곤란하다. 눈에 보이는 균열만 뚝딱 때우지 말고 약화된 석재의 수명을 늘리는 방안도 강구했으면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