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하던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도화선에 다시 불이 붙었다. 정부는 미국과의 추가 협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자동차 부문에서 좀 양보했지만 돼지고기,의약품,비자 등에서 상응하는 것을 얻어낸 윈-윈협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야당은 자동차 부문의 양보로 4조원이 넘는 손해를 본 반면,우리가 얻어냈다고 하는 돼지고기 관세 철폐 기한 2년 연장이나 복제약 제조 · 판매 규제 유예기간 연장 등의 효과는 미미한 퍼주기식 굴욕협상이라고 주장한다.

야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 · 칠레 FTA 때 농민단체의 반발처럼,피해를 볼 자동차업계와 노조가 거세게 들고 일어나고,축산 · 제약업계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관련 업계 모두 환영성명을 발표했다. 국민이 냉정히 판단해 한 · 칠레 FTA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 같은 해프닝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첫째,한 · 미 FTA 비준은 더 이상 소모적인 정치게임에 휘말리지 말고 철저한 경제논리에 의해 주판알을 튕겨야 한다. 우선 미국과의 FTA를 사장시키는 것과 추가 협상을 해서라도 조기에 성사시키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국익에 유리할까. 당연히 대답은 후자다. 거대한 미국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경쟁국인 일본이나 중국보다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둘째,역사적 전례를 볼 때 FTA의 경제적 효과는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다. 필요하다면 겉으로 다소 양보하면서도 뒤로 실익을 챙길 줄도 알아야 한다. 활짝 문이 열릴 미국 시장을 우리 기업이 잘 활용하면 전자 섬유 자동차 IT 분야에서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이번 추가 협상의 내용을 보면 재미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FTA 반대론자들이 그간 주장하던 'FTA:재벌 이익-약자인 중소기업과 농민 희생'이란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번 추가 협상의 승자는 농민과 중소기업이다. 우려하던 쇠고기 추가 개방을 막았으며,돼지고기 축산농가에 개방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줬다. 자동차부품 관세가 철폐되면 중소기업의 대미 수출이 늘어나고 포드나 크라이슬러 등에도 납품함으로써 국내 자동차부품산업의 국제화를 촉진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반면,승용차 관세 철폐를 4년간 유예할 때의 패자는 대기업인 완성차 업체다. 그런데 이들은 여유를 보이고 있다. 승용차 관세율이 2.5%인 미국에서 2만달러짜리 차를 팔 때 관세 부담은 500달러에 불과하다. 일본차와 품질 경쟁을 할 정도로 성장한 우리 자동차를 외국 소비자가 500달러의 차이 때문에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양국 의회의 비준을 거치면 2012년 초에는 한 · 미 FTA가 발효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내년 7월 발효가 예상되는 EU와의 FTA와 함께 두 개의 거대 경제권과 연결고리를 맺는 명실상부한 FTA 허브국가로 부상할 수 있다.

서강대 < 국제지역연구소장(경제학) syahn@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