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등의 대기업 인수.합병이 고가 매각 및 자금조달 논란 등으로 차질을 빚으면서 시장에 대기 중인 기업들의 매각 작업이 연쇄적으로 늦어질 전망이다. 더구나 내년에는 대선과 총선 등의 정치적인 이벤트를 한해 앞두고 있어 M&A시장이 휴업상태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이 보유 중인 하이닉스반도체와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들의 매각은 장기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8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현대건설 인수전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그룹과 채권단, 예비후보인 현대차그룹 간 진흙탕 공방으로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현대건설 채권단은 지난 7일 현대그룹에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으로부터 빌린 1조2천억원에 대한 대출계약서와 동양종금증권에서 조달하는 자금에 대한 자료를 14일까지 제출하라고 최후 통첩했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이 자료 제출 의무를 미흡하게 이행하거나 인수자금의 출처 등에 대한 의혹이 규명되지 않으면 법률 검토를 거쳐 주주협의회에서 양해각서 해지 여부 등을 논의할 방침이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자산규모 33억원인 법인이 은행에서 1조2천억 원의 자금을 빌리는 것은 전 세계 금융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며 "일단 14일까지 기다려본 뒤 주주협 개최 여부 등을 논의해 추가 방침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현대건설보다 먼저 개시된 산업은행의 대우건설 인수 작업도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다. 산업은행은 재무적 투자자들이 보유한 대우건설의 지분 39.5%를 인수키로 하고 인수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3조원을 웃도는 인수자금 마련을 위한 투자자 모집이 수월하지 않았다는 게 산업은행측의 설명이다. 대우건설 주가가 산업은행이 인수키로 한 주당 1만8천원을 여전히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그러나 이달내에 대우건설 인수작업을 매듭지을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현대건설 등 기업들의 매각 작업이 늦어지면서 대기 매물인 대우조선해양 등 기업들의 매각도 지연되고 있다. 채권단은 연내에 현대건설 매각을 마무리 짓는 대로 하이닉스 처리 방향도 결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대건설 매각이 지연되면서 하이닉스 처리 방안 마련은 내년께나 가능해졌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연내에 하이닉스 매각 방안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현대건설 매각 논란이 가라앉으면 채권금융회사들과 협의해 하이닉스 처리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권단은 하이닉스에 대해 사모주식펀드를 구성해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는 하이닉스 지분 15%에 대한 매각 제한 해제 여부도 논의 대상이다. 외환은행과 우리은행, 정책금융공사, 신한은행 등의 금융회사들은 연말까지 하이닉스 지분을 매각할 수 없다. 채권단은 다만 매각 제한이 풀리더라도 하이닉스 보유 지분을 블록세일로 처분하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하이닉스를 적절한 가격에 빨리 매각하려는 것은 좋은 주인을 찾기 위한 것"이라며 "하이닉스는 성장 동력을 찾는, 현금을 많이 보유한 대기업이 나서야 매각이 가능하지만 현재 이런 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르면 연내 M&A시장에 등장할 것으로 기대되던 대우조선도 내년에나 매물로 나올 전망이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현대건설 매각 등의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M&A시장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에 대우조선도 매물로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캠코가 주관을 맡고 있는 쌍용건설 매각도 내년께나 추진될 전망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그러나 내년에 M&A시장이 활성화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건설 매각 작업이 소송 제기 등으로 법정 공방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채권단이 하이닉스 등 대형 매물을 M&A시장에 내놓기가 어려울 전망인데다 시기적으로도 적당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2012년 대선과 총선을 앞둔 내년에는 M&A시장이 외풍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정치적 논리가 개입되면 매각이 더욱 어렵다"며 "어떤 대기업이 하이닉스 인수전에 참여하더라도 정치적 논란과 승자의 저주 논란 등에 시달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M&A는 대선과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경제적 논리보다 정치적 이슈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는 채권단이 대형 기업들을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팔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정연기자 jyhan@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