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고 짓밟고…올해도 어김없는 '격투기 국회'
정기국회 폐회를 하루 앞둔 8일 대한민국 국회는 아수라장이었다. 국회 중앙홀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보좌진 수백명이 뒤엉킨 싸움터였다. 본회의장은 여야 의원들 간 고성과 주먹질까지 오가는 활극장이나 다름없었다. 연말 예산국회를 둘러싼 정치권의 난투극은 벌써 3년째다.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재협상, 대포폰 사찰 논란 등과 맞물려 향후 정국이 급랭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이날 오전부터 여야 간 팽팽한 대립으로 초긴장 상태였다. 전날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120명,민주당 70명의 의원이 '불편한 동거'로 하룻밤을 보냈다. 여야 의원들은 본회의 표결에 대비해 하루종일 자리를 지켰다. 의장석을 지키기 위해 여야 의원들이 의자에 엉덩이 한쪽씩을 걸치는 광경까지 연출됐다.

같은 시간 본회의장 밖 중앙홀에서는 민주당 당직자와 보좌진 수백명이 입구를 봉쇄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국회 중앙홀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독재' '의회 쿠데타' '폭거'등의 격한 표현들이 쏟아졌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명박 독재의 본색이 드러나고 있지만 그 명이 다하고 있음을 이 대통령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며 "민주주의를 압살하려는 이 정권의 독재에 항거,끝까지 몸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오후 2시 본회의를 앞두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진입을 시도하면서 중앙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상득 정몽준 의원 등 중진들이 대기하는 가운데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으싸,으싸"를 외치며 4~5차례 돌파를 시도, 의원들을 1~2명씩 본회의장으로 들여보내는 '밀어넣기'를 시도했다. 몸싸움으로 본회의장 현관문 유리벽에는 금이 가고, 탈진해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여성 당직자도 속출했다. 한나라당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이재오 특임장관 등 20여명의 의원들을 차례로 본회의장으로 들여보냈다. 손 대표는 뒤엉킨 여야 보좌진 사이에서 눈을 감은 채 가부좌로 앉아 무언의 시위를 벌였다.

본회의장 진입에 실패한 박희태 국회의장은 오후 2시20분께 의사권을 정의화 부의장에게 넘기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한나라당은 1차 진입으로 과반인 150여명을 넘겼으나 안상수 대표와 이주영 예결위원장 등이 본회의장 바깥에 있어 본회의 강행을 잠시 늦췄다. 오후 3시30분께 안 대표가 보좌진 수백명의 경호를 받으며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본회의장 안에서는 김성회 한나라당 의원이 강기정 민주당 의원의 얼굴을 가격하는 불상사가 빚어졌다.

오후 4시30분께 한나라당이 경위 등을 동원, 의장석에서 농성 중인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을 끌어내렸다. 이 과정에 발길질과 욕설이 난무했다. 이정희 민노당 의원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결국 몸싸움 끝에 여당 의원들이 야당 의원들을 끌어내리고 의장석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야당 의원들의 고함과 피켓시위 속에 마이크를 잡은 정 부의장은 오후 4시40분께 내년도 예산안을 시작으로 법안들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민주당은 친수구역법 LH(한국토지주택공사)법 서울대법인화법까지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하자 집단 퇴장,중앙홀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긴급 의총을 열어 향후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현장에서 여야 간 몸싸움을 지켜본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3년째 연말마다 정치권의 이런 광경을 보는 것도 지겹다. 국민들이 반드시 이런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