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전쟁의 주연은 박희태 국회의장과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다. 직권상정으로 한나라당 단독 처리의 길을 터준 박 의장과 강행 처리에 성공한 김 원내대표,거꾸로 저지에 실패한 박 원내대표의 이해는 갈렸다.

박 의장은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라는 원칙을 지켰다는 점에서 긍정 평가가 많다. 매년 정기국회를 넘겨 12월 말에 처리해온 구태의 고리를 끊었다는 점에서다. 물론 박 의장은 잃은 것도 있다. 여야 합의를 외면한 채 여당편에 섬으로써 향후 국회운영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됐다. 당장 박 원내대표는 "박희태 의장은 의장 자격을 갖추지 못한 '바지의장'"이라며 강력 비판했다.

박 의장은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었다. 박 의장이 예산안 통과 직후 국회 대변인을 통해 "연년세세(年年歲歲) 연말 예산국회가 파행처리를 되풀이하게 된 것에 대해 국민들께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이번에 원숙한 민주주의 모습을 이뤄내지 못한 점을 뼈아프게 자성하면서 내일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집권여당 원내대표로서 약속을 지키는 모습과 실제로 밀어붙인 추진력이 돋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야당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닌다"는 여당 내부의 비판은 잠재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와의 신뢰에 금이 간 점은 그가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향후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 등을 풀어가야 하는 입장에서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다.

박 원내대표는 일단 "내상이 깊다"는 평가가 많다. 여당의 예산안 단독처리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12월 임시국회도 관철해 내지 못했다. 본인 스스로 사의표명을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박 원내대표가 사퇴를 고민하자 복수의 최고위원들이 "누가 원내대표 자리에 있었더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만류했다는 전언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모든 의원들이 만류해 사퇴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지만 그의 지도력에 어느 정도 상처가 불가피하게 됐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