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채권단이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예치금 1조2000억원의 무담보 · 무보증 대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현대그룹 측에 요구한 대출 관련 서류의 요건을 갑자기 변경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9일 외환은행과 정책금융공사 등에 따르면 채권단은 지난 7일 두 차례에 걸쳐 현대그룹에 보낸 2차 공문을 통해 나티시스은행 자금에 대한 '대출계약서 또는 구속력 있는 텀시트(term sheet · 세부 계약조건을 담은 문서)'를 14일까지 제출토록 요구했다.

11월30일 채권단이 발송한 1차 공문에선 '대출계약서 및 부속서류'를 요구했으나 이날 문서에서는 '구속력 있는 텀시트'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대출계약서가 아닌 '텀시트'를 내도 된다고 요건을 변경한 것이다.

채권단은 당시 동양종합금융증권의 8000억원 재무적 투자와 관련,컨소시엄 계약서에 풋백옵션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있었는지,합의가 없었다면 향후 합의 일정 등을 소명할 것도 공식 요구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자동차그룹은 물론 금융권에서도 채권단이 갑자기 제출서류 요건을 바꾼 배경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언론에 발표할 때와 달리 채권단이 갑자기 요건을 바꾸면서 현대그룹으로 하여금 또다시 엉뚱한 서류로 버티기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텀시트는 조건합의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별도의 이면 합의나 약정이 없다는 점도 보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사자 간 논의 과정에서 계약조건이 수정되면 새롭게 작성되는 만큼 복수의 텀시트가 있을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공식 해명을 통해 "현대그룹에 대출계약서나 그에 준하는 텀시트 등을 요청한 것은 대출계약과 관련해 체결한 모든 증빙자료를 제출토록 한 것으로 보다 강화된 요구"라고 밝혔다. 정책금융공사 관계자도 "정확하게는 '대출계약서 또는 구속력 있는 대출조건서류'를 내라고 했다"며 "어떤 조건으로 대출이 실행됐는지 살펴보자는 기존 취지가 그대로 있기 때문에 완화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자금 5조5100억원 중 1조2000억원을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서 담보 없이 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출을 받은 현대상선 프랑스 법인 자산규모가 33억원에 불과해 진위 논란이 일자 채권단은 대출계약서를 공개할 것을 요구해왔다.

한편 현대그룹은 이날 채권단이 요청한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에 대해 "27일까지 무조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라는 것은 선후가 바뀌었다"며 "양측이 만나서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의 필요성 여부를 먼저 협의하자는 취지의 회신공문을 채권단에 보냈다"고 밝혔다. 앞서 채권단은 운영위원회를 열어 "2009년도 말 재무구조 평가에 따른재무구조개선 약정은 오는 27일까지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정하고 현대그룹에 9일까지 이를 수용하라고 통보했다.

이태훈/김수언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