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인물열전] (30) 진평(陳平), 빼어난 외모의 백수건달, 박복한 아내를 만나 승상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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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하지만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을 과감히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단을 내리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사기》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나오는 진평(陳平)이 그런 인물이다. 양무(陽武)의 호유현 사람인 그는 집안이 가난했지만 책 읽기를 즐겨했다. 밭 30무(畝 · 이랑)가 있었는데,형 진백(陳伯)의 집에 더부살이하며 살았다. 진백은 밭 가는 일을 하면서도 동생 진평이 마음껏 공부하도록 배려했다.
진평은 키가 크고 풍채도 있어 누가 보아도 빼어난 외모를 자랑했다. 진평을 만나는 사람들은 "자네는 가난한데 무얼 먹어 이렇듯 잘 생겼는가?"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는 그는 더부살이하는 주제에 집안을 살피지도 않고 농사일을 돌보지도 않으며 그저 방에 처박혀 글을 읽거나 세상사에 관심을 둘 뿐이었다. 이런 행태를 보다못한 형수는 차라리 시동생이 없는 편이 더 낫다며 면전에서 구박했다. 그러나 형수의 구박은 오래가지 못했다. 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는 진백은 구박하는 아내를 집밖으로 내쫓아 버렸기 때문이다.
형과 함께 장성한 진평은 가정을 꾸려 안정을 취해야 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부자들 가운데 그에게 딸을 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가난이라면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진평 역시 가난한 집 여자를 얻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마침 호유현의 부자 장부(張負)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손녀딸이 다섯 번이나 시집을 갔지만 그때마다 남편이 갑자기 죽어 아무도 그녀에게 장가들려 하지 않았다. 진평은 팔자가 사나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마을에 상을 당한 사람이 있었는데,진평이 상가 일을 도와주러 다녔다. 장부는 가장 먼저 가서 가장 늦게 돌아오는 진평을 주시하게 됐다. 외모가 유독 돋보이기도 했지만 진평 또한 장부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장부가 시종들과 함께 진평을 미행해 집으로 가 보니 진평의 집은 성곽을 등진 막다른 골목에 있었다. 해진 자리로 만든 문이었지만,이상하게도 문 밖에 마을 장자(長者 · 덕이 고매한 자에 대한 총칭)들의 수레바퀴 자국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진평이 가난하지만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장부는 집으로 돌아와 아들 장중(張仲)에게 "손녀를 진평에게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중은 "진평은 집이 가난한데도 생업에 종사하지 않아 온 고을 사람들이 그를 비웃고 있는데 어찌하여 제 딸을 그에게 주려고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장부는 "진평처럼 외모가 빼어난데도 끝까지 가난하고 미천하게 지내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마침내 손녀딸을 주었다.
결국 진평이 장가든 것은 장래의 가능성에 대해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진평은 장씨의 손녀에게 장가든 후 쓸 재물이 넉넉해지고 따르는 무리들도 많아지면서 교류하는 자들의 범위도 날로 확장됐다. 그는 훗날 고조를 도와 모반한 한신을 사로잡는 데 공을 세우고 다양한 계책을 내 한나라 제국의 기초를 굳건히 하는 데 기여해 승상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진평의 결혼을 두고 박복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기회주의자로 폄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헤아려 보고 어떻게 포지셔닝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리 녹록지 않다. 한쪽을 얻는다는 것은 또 다른 것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가지를 모두 얻으면서 목적을 달성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사기》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나오는 진평(陳平)이 그런 인물이다. 양무(陽武)의 호유현 사람인 그는 집안이 가난했지만 책 읽기를 즐겨했다. 밭 30무(畝 · 이랑)가 있었는데,형 진백(陳伯)의 집에 더부살이하며 살았다. 진백은 밭 가는 일을 하면서도 동생 진평이 마음껏 공부하도록 배려했다.
진평은 키가 크고 풍채도 있어 누가 보아도 빼어난 외모를 자랑했다. 진평을 만나는 사람들은 "자네는 가난한데 무얼 먹어 이렇듯 잘 생겼는가?"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는 그는 더부살이하는 주제에 집안을 살피지도 않고 농사일을 돌보지도 않으며 그저 방에 처박혀 글을 읽거나 세상사에 관심을 둘 뿐이었다. 이런 행태를 보다못한 형수는 차라리 시동생이 없는 편이 더 낫다며 면전에서 구박했다. 그러나 형수의 구박은 오래가지 못했다. 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는 진백은 구박하는 아내를 집밖으로 내쫓아 버렸기 때문이다.
형과 함께 장성한 진평은 가정을 꾸려 안정을 취해야 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부자들 가운데 그에게 딸을 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가난이라면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진평 역시 가난한 집 여자를 얻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마침 호유현의 부자 장부(張負)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손녀딸이 다섯 번이나 시집을 갔지만 그때마다 남편이 갑자기 죽어 아무도 그녀에게 장가들려 하지 않았다. 진평은 팔자가 사나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마을에 상을 당한 사람이 있었는데,진평이 상가 일을 도와주러 다녔다. 장부는 가장 먼저 가서 가장 늦게 돌아오는 진평을 주시하게 됐다. 외모가 유독 돋보이기도 했지만 진평 또한 장부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장부가 시종들과 함께 진평을 미행해 집으로 가 보니 진평의 집은 성곽을 등진 막다른 골목에 있었다. 해진 자리로 만든 문이었지만,이상하게도 문 밖에 마을 장자(長者 · 덕이 고매한 자에 대한 총칭)들의 수레바퀴 자국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진평이 가난하지만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장부는 집으로 돌아와 아들 장중(張仲)에게 "손녀를 진평에게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중은 "진평은 집이 가난한데도 생업에 종사하지 않아 온 고을 사람들이 그를 비웃고 있는데 어찌하여 제 딸을 그에게 주려고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장부는 "진평처럼 외모가 빼어난데도 끝까지 가난하고 미천하게 지내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마침내 손녀딸을 주었다.
결국 진평이 장가든 것은 장래의 가능성에 대해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진평은 장씨의 손녀에게 장가든 후 쓸 재물이 넉넉해지고 따르는 무리들도 많아지면서 교류하는 자들의 범위도 날로 확장됐다. 그는 훗날 고조를 도와 모반한 한신을 사로잡는 데 공을 세우고 다양한 계책을 내 한나라 제국의 기초를 굳건히 하는 데 기여해 승상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진평의 결혼을 두고 박복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기회주의자로 폄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헤아려 보고 어떻게 포지셔닝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리 녹록지 않다. 한쪽을 얻는다는 것은 또 다른 것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가지를 모두 얻으면서 목적을 달성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