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의 우호세력으로 알려져 있던 독일의 쉰들러 도이치랜드가 최근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확대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인 현대그룹쪽 지분이 50%에 육박해 사실상 적대적 인수ㆍ합병(M&A)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 쉰들러가 노리는 것은 뭘까?

10일 관련업계와 M&A 업계 등에 따르면 쉰들러 측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엘리베이터 사업부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올 9월 현재 국내 시장점유율이 41.3%로 단연 '1위'다.

다국적기업인 오티스엘리베이터(19.8%) 및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12.7%) 등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점유율 차이를 보이고 있다.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는 2003년 10월 독일 티센크루프가 동양엘리베이터로부터 승강기사업부문을 양수받은 곳으로 외국계 회사다.

쉰들러가 2004년 인수한 곳도 있다. 중앙엘리베이터가 그 주인공으로 아직까지 점유율이 미미해 OEM(주문자상표부착) 생산을 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베이터 관련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 엘리베이터 회사 중 순수자본의 토종 회사는 현대엘리베이터 뿐"이라며 "국내 정서상 건설업체들도 주로 현대엘리베이터에 승강기 건설을 맡기고 있어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관련시장 규모는 세계 4~5위에 달할 정도로 크며 아파트 등 고층 빌딩이 많고 초고층 건물을 포함해 건축건설이 계속돼 미래 전망도 밝다. 또 신규로 설치하는 엘리베이터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이미 설치된 엘리베이터도 많아 유지보수 시장이 클 뿐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과도 가까워 기술력을 갖춘 한국 업체를 교두보로 중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사업권을 노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나서며 경영지배 구조가 취약해진 틈을 타 지분을 늘리는 방식으로 경영압박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M&A 전문가는 "쉰들러가 국내 엘리베이터사업에서 외국계 회사들끼리 공정하게 경쟁을 벌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계속 늘려 사업권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쉰들러의 궁극적인 목표는 엘리베이터 사업부를 차지하는 것"이라며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을 지원하고 현대건설 인수에도 나선다는 점을 빌미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 증자계획이 쉰들러에 오히려 기회?

상황이 이런 가운데 지난 9일 현대엘리베이터는 유상증자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10일 현대엘리베이터 주가가 7% 이상 뛰었다. 장초반부터 외국계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주가를 밀어올렸다. 일반적으로 증자계획은 향후 잠재물량 부담으로 주가에 긍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아직까지 증자 방법은 물론 그 규모와 목적 등 알려진 것은 전혀 없다. 다만 쉰들러의 보유지분(약 33%)이 우려돼 일반공모 방식의 증자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3자배정이나 주주배정 증자방식이 유력해진다. 3자배정일 경우 '백기사(우호지분)' 지분 확보일 가능성이 크고, 주주배정(실권주 일반공모 가능성 포함)이면 현대건설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시장에선 이날 현대엘리베이터의 급등 배경으로 현대그룹과 쉰들러 간 경영권 갈등 본격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사내이사 두 명(현정은 대표이사 회장, 송진철 대표이사 사장) 중 송 대표의 임기만료가 내년 3월이기 때문에 이사회 구성을 앞두고 최대주주인 현대그룹(보유지분 약 50%)과 쉰들러 간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일각에선 쉰들러가 '유상증자 금지 가처분 신청' 등 초강수 전략을 들고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M&A업계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증자 목적이 현대건설 인수 등 기존 사업성과 연관성이 크지 않을 경우 쉰들러가 압박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 듯 쉰들러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매입이 계속 진행 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외국인 매수세가 대거 유입된 곳은 씨티그룹 창구다. 이 창구는 바로 쉰들러가 최근 장내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늘리기 위해 사용한 곳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쉰들러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3일까지 약 13만주(1.83%)를 사들였고, 같은 기간 씨티그룹을 통해서 유입된 물량도 13만783주로 집계됐다. 쉰들러와 씨티그룹의 매수가 없는 날도 지난 2일로 똑같다. 씨티그룹에서 이날 현대엘리베이터를 산 매수량은 1만7000주로 집계됐다.

한경닷컴 정형석 기자 / 정현영 기자 chs8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