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6일 저녁.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현 사장)은 커뮤니케이션팀과 함께한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한마디를 건넸다. "싱글 초기화면을 바꾸어 보면 안 될까요. "

싱글은 삼성의 인트라넷으로,27만명의 삼성 임직원은 출근하자마자 로그인한다. 이 부사장은 무의미한 계열사 광고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팀은 1주일 정도 세계 LED TV 1위 등 '대한뉴스'성 화면을 만들어 테스트했다. 이에 대해 이 부사장은 "젊은 직원들의 반응이 별로예요. 대리 일반사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으면 합니다"라는 의견을 냈다. '소통'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 것이다. 삼성의 소통 시스템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싱글,재미와 메시지 공존 공간

이후 싱글 초기화면에는 연예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삼성 광고를 찍은 연예인 얼굴과 함께 삼성 직원들의 파이팅을 기원하는 내용이 중심이었다. 최근에는 걸그룹 '2NE1'을 이끌고 있는 씨엘의 리더십 등 다양한 메시지가 곁들여지고 있다. 13일 화면에는 아시안게임에서 스타로 떠오른 체조선수 손연재가 등장하기도 했다. 연예인뿐 아니라 인터넷상에서 쓰이는 속어도 심심찮게 올라왔다.

보수적 문화를 갖고 있는 삼성 내에서는 '파격'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임원들은 등장인물이 누구인지,인터넷 약자가 나오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초기화면을 보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팀은 "임원은 몰라도 젊은 직원과 함께해야 한다는 지침대로 계속 초기화면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격과 재미뿐 아니라 진지한 메시지도 떴다. '교병필패(驕兵必敗)''마불정제(馬不停蹄)' 등 교만을 경계하는 사자성어와 "10년 후에는 현재 삼성이 1위 하는 모든 제품은 사라질 수 있다"는 이건희 회장의 메시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싱글 초기화면이 심심찮게 언론 기사로 나올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삼성 관계자는 "오너의 관심 속에 소통의 초점을 임원과 간부가 아닌 대리와 사원급에 맞추고 여기에 재미를 더한 것이 소통 변화의 키워드"라고 말했다.

◆미디어삼성,직원들이 먼저 알아야

소통 방식의 변화는 곳곳으로 번져갔다. 삼성의 사내 언론 역할을 하는 미디어삼성이 대표적이다. 임원인사가 발표된 지난 8일 미디어삼성은 일시적인 접속 장애 현상이 벌어졌다. 임원인사 결과를 언론과 동시에 미디어삼성에 공개하자 하루에 10만명 넘게 접속하면서 부하가 걸린 탓이다. 과거 미디어삼성은 지나간 보도 자료를 공개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중요한 회사일은 언론보다 직원이 먼저 알아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실시간 소식을 전하는 명실상부한 사내 미디어가 됐다. 이 회장 복귀 소식도 언론과 동시에 미디어삼성을 통해 사내에 공개됐다.

매주 2회씩 하는 그룹방송도 변신 중이다. 단순한 지식,정보 전달 채널에서 벗어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을 갖춰가는 것.영화,드라마,시트콤 형식을 동원하고 주제도 회의,회식,상사와의 관계,야근 등 기업문화 개혁과 관련된 내용으로 바뀌고 있다.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룹은 물론 대부분 계열사가 블로그와 트위터를 개설,소비자들과의 적극적인 실시간 소통에 나섰다. '웬만한 잡지를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보 '삼성앤유'는 삼성 직원이 아닌 일반인도 신청하면 받아볼 수 있어 매달 인쇄 부수가 급증하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