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Story] 경동제약, 원료서 개량신약까지…대형업체 앞서 의약품 국산화 '외길'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hurrah! 히든 챔피언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경동제약은 웬만큼 규모를 갖춘 국내 200여 제약업체 중 매출액 면에서 30위권에 머무는 중견업체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형업체도 쉽게 할 수 없는 개량신약과 원료합성법 등을 속속 개발하고 있고 세계 특허도 줄지어 획득하고 있다. 이 회사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경동제약(회장 류덕희 · 72)은 서울 봉천동에 본사를 두고 있는 전문 의약품 생산업체다. 공장은 류 회장의 고향인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에 있다. 이 회사는 혈압강하제 항바이러스제 소화성궤양용제 등을 생산하고 있다.
연간 매출액은 1000억원대(지난해 매출은 1042억원)다. 수천억원에 이르는 대형 제약업체에 비해선 그리 큰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연구 · 개발(R&D)에 관한한 톱클래스의 저력이 있다. 위장계 약물인 '레바미피드',항바이러스제인 '팜시클로비어' 등 많은 원료의약품의 합성법 및 제형(劑形 · 의약품을 사용 목적이나 용도에 맞게 정제 · 연고제 · 주사제 등 적절한 형태로 만드는 것)을 개발해 제품화했다.
이들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것으로 경동제약은 지금까지 수천억원에 이르는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두고 있다. 15개국으로 의약품을 수출하고 있다. 류 회장은 "현재 수출액은 연 300만달러 수준이지만 일본 중국 등지에서 요청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 2~3년 내 1000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류 회장은 성균관대 화학과를 나와 1975년 경동제약을 창업했다. 작은 업체를 인수해 제약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종업원은 25명에 불과한 소기업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고 의약품 유통업체를 경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왕 이 분야에서 일을 할 바에야 제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의약품 제조에 나섰다. 처음에는 무좀약과 영양제를 생산했다. 매출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 굴지의 제약업체들은 외국의 거대 제약업체와 각각 독점 수입계약을 맺고 의약품을 수입 판매하는 사례가 많았다. 류 회장은 타사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규모도 작았고 후발주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경영전략은 크게 4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전략은 수입의약품 대체였다. 당시엔 관세가 높아 수입의약품이 아주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국내 제조로 대체하면서 점차 매출을 늘려나갔다. 소비자들의 부담도 줄어들었다.
두 번째 전략은 원료 차별화였다. 국내에선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제약업체와 제휴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류 회장은 "이들 제약업체로부터 원료를 들여올 수만 있다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고 판단해 유럽시장을 샅샅이 훑었다. 오퍼상을 통해서도 원료 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에 직접 유럽을 다니며 원료를 구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자 해당 외국 업체에서 원료 수출을 중단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기존 거래 업체의 눈치를 본 것이다.
이번엔 세 번째 전략을 세웠다. 원료 개발이다. 아주 어려운 과정이었다. 모 국책연구기관과 손잡고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이 국책기관에는 박사급이 즐비했지만 왠지 연구결과는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았다. 개발속도도 아주 느렸다. 그래선 비즈니스를 할 수 없었다. 대학 후배 중 우수한 박사급 인재들을 영입해 원료 개발을 맡겼다. 이들 인재가 몸을 던져 일하자 점차 원료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수입에 의존하는 원료의약품을 직접 합성하고 새로운 약물전달기술을 꾸준히 R&D해 해열진통제 항바이러스제와 같은 원료의약품을 국내 최초로 합성했다. 혈압강하제 및 전립선비대증 치료제 등의 새로운 제형도 개발했다. 원료의약품 개발에 꾸준히 매진한 결과 지금은 주력 완제품 대부분에 직접 생산한 원료를 투입하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의약품 역시 원료합성부터 완제품까지 자체 연구진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를 통해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원료 국산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원료 생산시설 확충을 위해 외환위기 직전에 금융기관으로부터 달러화 표시 자금을 약 40억원 정도 빌렸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터지자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급등해 부채는 순식간에 80억원으로 불어났다. 당시 회사 규모로 볼 때 이 정도 부채는 큰 부담이었다. 다행스럽게 원료 국산화를 통해 매출과 이익이 늘자 빚을 만기 전에 앞당겨 갚을 수 있었다. "그때 얻은 교훈을 거울삼아 무차입경영을 시작했다"고 류 회장은 설명한다.
네 번째 전략은 개량신약 개발과 세계 특허 획득을 통한 글로벌 시장개척이다. 이 회사는 2년여의 연구 끝에 2008년 두 가지 개량신약을 탄생시켰다. 제1호 개량신약인 '실루민 정'은 다국적 제약사 비만치료제의 성분과 구조를 변경한 제품이다. 제2호 개량신약인 '인히플라트 정'은 혈전치료제다. 류 회장은 "물리 · 화학적으로 안정적이며 순도를 높인 제품"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제품인 거대 제약회사의 제품을 대체한 개량신약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 개량신약과는 별도로 올 6월에는 소화성 궤양 치료제인 에소프라졸 캡슐도 상품화했다.
그동안 기술개발로 14건의 세계 특허 및 29건의 국내 특허를 취득했다. 출원 중인 특허도 9건에 이른다. 이같이 기술개발에 노력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류 회장은 국민훈장동백장과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동안 전문 의약품 개발과 생산에만 주력해왔으나 최근에는 '그날엔 정(해열 · 진통제)' 등 일반의약품을 개발하는 등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서 1994년 러시아와 파키스탄에 첫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 베트남 인도 필리핀 캄보디아 칠레 멕시코 아랍에미리트 카자흐스탄 등에 완제의약품을 수출하고 있다. 일본에도 다양한 원료의약품 수출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EU)에는 완제의약품 및 원료의약품 2~3개를 등록할 예정이다. 류 회장은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시장 진출도 모색하고 있어 앞으로 원료의약품 수출이 크게 늘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세계적인 수준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경기도 화성에 GMP(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공장을 구축해 국제보건기구(WHO) 기준에 맞는 시설을 완비했다. 중앙연구소에는 합성연구실 제제연구실 분석연구실을 두고 체계적이고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2006년 6월에는 까다로운 미국의 의약품 기준을 충족시키는 cGMP 완제품 신공장을 완공해 무결점 의약품 생산에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원료의약품 cGMP 공장을 2000㎡ 규모로 신축 중이며 곧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시설을 기반으로 일본 등 선진국에 고품질 원료의약품 수출에 나설 예정이다.
류 회장은 나눔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해마다 어려운 이웃과 사회복지시설을 돕고 있다. 그는 사재와 경동제약 출연분을 합쳐 85억원으로 '경동송천재단'을 설립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R&D도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원한 장학금만 16억원이 넘는다. 인천에 정신지체자센터도 지어줬다. 기자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마침 수녀들이 류 회장을 만나기 위해 응접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인천 지역 정신지체자를 보살피는 수녀들이다. 류 회장은 가톨릭 신자로 평신도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영세명은 '모세'다. 애급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온 모세처럼 힘들어도 남들이 안 간 길을 개척해 가는 게 그의 경영스타일인 듯하다. 그가 향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어디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