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 개발(R&D)의 부산물로 사업활동 보호를 위한 방어적 수단으로만 여겨지던 특허가 독립적인 수익 창출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허를 갖고 상품을 만들어 파는 데 그치지 않고,특허 자체를 거래해 수익을 내는 사업이 생겨난 것이다.

최근 등장한 특허 비즈니스는 라이선싱(licensing),지원 서비스,금융 등의 유형으로 나뉜다. 라이선싱은 기업이나 연구기관으로부터 특허를 매입하거나 위탁받은 뒤 이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제3의 개인 또는 기업에 양도하고 대가를 받는 사업이다.

특허권을 침해한 기업에 거액의 소송을 제기해 수익을 챙기는 이른바 '특허 괴물'도 라이선싱 기업의 한 유형이다. 세계 최대 특허 라이선싱 기업인 인텔렉추얼벤처스는 50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모집해 3만여건의 특허를 확보했다. 이탈리아의 시스벨은 여러 기업에 흩어져 있는 관련 특허를 위탁받아 특허 풀(pool)을 만들어 관리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낸다.

특허 거래를 중개하는 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특허 거래가 중개업체를 통해 비밀리에 이뤄졌으나,요즘은 경매나 인터넷 사이트 등 공개된 시장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미국의 특허 중개기업 오션토모는 2006년 세계 최초의 특허경매 시장을 열었다. 나인시그마 이노센티브 등은 온라인에서 기술 보유자와 수요 기업을 연결해준다.

소송 등 특허 관련 분쟁이 늘면서 특허 침해 여부를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기업도 많아졌다. 1992년 설립된 칩웍스는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제품의 특허 침해 여부를 조사해 그 결과를 관련 기업에 제공한다. 이 회사는 70여명의 전문 기술자를 투입해 특허 침해가 일어난 제품을 찾아내고 기술적 증거를 확보한다. 지금까지 1만여개 제품을 조사해 3만여건의 특허 침해 사례를 찾아냈다.

금융기관들은 특허를 투자 대상으로 삼는 펀드를 설립하는 등 여러 기법을 동원해 특허 비즈니스에 참여한다. 독일의 대형 투자은행 도이체방크는 특허펀드를 운용하고 있으며,라이선싱 기업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도 늘고 있다.

특허 비즈니스의 확대는 새로운 사업모델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특허 관련 분쟁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에 큰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특허 라이선싱 기업이 제기한 소송 건수는 2000년 100여건에서 2008년 500여건으로 증가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 사이에 벌어진 특허 분쟁은 2006년 47건에서 2009년 106건으로 급증했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은 특허 분쟁을 회피하려는 수동적 방어 전략에 치중했다. 하지만 산업 간 융 · 복합화로 필요한 특허가 늘어나고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출현하는 환경에서는 방어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허를 기업 전략의 한 축으로 삼아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중개기업을 활용해 우수한 특허를 매입하고 전략적 출원 활동을 통해 강력한 특허망을 구축해야 한다. 특허를 보유한 기업을 M&A하거나 제휴 관계를 맺는 방법도 있다. 애플은 2005년 M&A한 핑거워크스의 멀티터치 기술을 바탕으로 아이폰을 개발했다. 또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특허 전문팀을 구성해 특허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임영모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mlim@s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