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가 무슨 경영…' 편견 이기려 묵묵히 노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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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자서전 <<스틱 투 잇!>> 출간
"인생을 새로 시작할 기회가 왔다. 하늘이 무너진 것 같겠지만,너에겐 슬퍼할 겨를이 없다. "
1970년 7월12일 서울시내 모 산부인과.3일 전 막내(채승석 애경개발 사장)를 출산한 장영신 애경 회장(74 · 사진)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평소 다니던 성당의 피터 양 신부였다. 한참 뜸을 들이던 그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한마디가 떨어졌다. "오늘 아침 심장마비로 남편(채몽인 애경 창업주)이 다른 세상으로 갔다"는 것.미국 체스트넛힐대를 졸업한 뒤 10년 넘게 집안 일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매달렸던 주부는 이처럼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기업인의 길을 걷게 됐다.
장 회장이 지난 38년 동안 애경그룹을 이끌면서 느낀 소회를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책을 펴냈다. 제목은 '힘내,포기하지 마'란 의미의 《스틱 투 잇!(Stick to It!)》.힘에 부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였던 '주문' 같은 단어를 자서전(표지)의 제목으로 달았다.
책에는 '국내 1호 여성 최고경영자(CEO)'란 타이틀 때문에 겪어야 했던 시련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남편이 죽은 뒤 한동안 네 명의 아이들하고만 시간을 보냈어요. 어느날 집 앞을 지나가는 학생들을 넋 놓고 보고 있는데 큰 애(채형석 애경 총괄부회장)가 이러는 겁니다. '엄마,걱정마.학생들 상대로 뽑기장사하면 되잖아.' 아이 눈에는 제가 돈 걱정하는 걸로 보였던 거죠.그런 아들이 대견하고 안쓰러워서 와락 끌어안고는 펑펑 울었어요. 남편이 죽은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입니다. "
장 회장은 그 길로 서울 낙원동에 있는 경리학원을 다니며 남몰래 '경영 공부'를 시작했고,1972년 '애경그룹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반발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집안 어른들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며 혀를 끌끌 찼고,몇몇 임원들은 "주부가 무슨 경영을…"이라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왕따'였죠.임원들의 눈빛을 보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오가는 회의석상은 가시방석이었고….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어요. '거봐,여자는 안돼'라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거잖아요. 고시공부하듯이 매일 밤늦게까지 회사 업무에 매달렸습니다. '이대로 잠들어 내일 아침에 눈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그렇게 1년을 보냈더니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럭키 동산유지 등의 참여로 애경의 견고했던 '비누 왕국'이 무너지던 때 회사를 맡은 장 회장은 여성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과 유연한 사고를 앞세워 애경을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장 회장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보다 강하거나,잘난 것이 아니라 그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믿고 묵묵히 노력한다는 것"이라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목표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책에는 장 회장의 인간적인 면모도 담겨 있다. 그는 "주부 입장에서 직접 써봐야 제품의 장단점을 알 수 있다"며 가족들에게 빨래만큼은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한때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주저없이 '빨래'라고 답했을 정도였다.
장 회장은 정치에 대한 소감도 밝혔다. "짧은 국회의원 생활(2000년 4월~2001년 7월)도 해봤지만,정치는 저와 영 안맞았습니다. 기업인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발버둥을 치는데,정치인들은 국민의 세금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기업인에게 목숨과도 같은 시간 약속은 어찌나 안지키던지….기업인의 본분은 회사를 잘 경영하는 데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1970년 7월12일 서울시내 모 산부인과.3일 전 막내(채승석 애경개발 사장)를 출산한 장영신 애경 회장(74 · 사진)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평소 다니던 성당의 피터 양 신부였다. 한참 뜸을 들이던 그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한마디가 떨어졌다. "오늘 아침 심장마비로 남편(채몽인 애경 창업주)이 다른 세상으로 갔다"는 것.미국 체스트넛힐대를 졸업한 뒤 10년 넘게 집안 일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매달렸던 주부는 이처럼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기업인의 길을 걷게 됐다.
장 회장이 지난 38년 동안 애경그룹을 이끌면서 느낀 소회를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책을 펴냈다. 제목은 '힘내,포기하지 마'란 의미의 《스틱 투 잇!(Stick to It!)》.힘에 부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였던 '주문' 같은 단어를 자서전(표지)의 제목으로 달았다.
책에는 '국내 1호 여성 최고경영자(CEO)'란 타이틀 때문에 겪어야 했던 시련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남편이 죽은 뒤 한동안 네 명의 아이들하고만 시간을 보냈어요. 어느날 집 앞을 지나가는 학생들을 넋 놓고 보고 있는데 큰 애(채형석 애경 총괄부회장)가 이러는 겁니다. '엄마,걱정마.학생들 상대로 뽑기장사하면 되잖아.' 아이 눈에는 제가 돈 걱정하는 걸로 보였던 거죠.그런 아들이 대견하고 안쓰러워서 와락 끌어안고는 펑펑 울었어요. 남편이 죽은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입니다. "
장 회장은 그 길로 서울 낙원동에 있는 경리학원을 다니며 남몰래 '경영 공부'를 시작했고,1972년 '애경그룹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반발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집안 어른들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며 혀를 끌끌 찼고,몇몇 임원들은 "주부가 무슨 경영을…"이라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왕따'였죠.임원들의 눈빛을 보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오가는 회의석상은 가시방석이었고….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어요. '거봐,여자는 안돼'라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거잖아요. 고시공부하듯이 매일 밤늦게까지 회사 업무에 매달렸습니다. '이대로 잠들어 내일 아침에 눈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그렇게 1년을 보냈더니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럭키 동산유지 등의 참여로 애경의 견고했던 '비누 왕국'이 무너지던 때 회사를 맡은 장 회장은 여성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과 유연한 사고를 앞세워 애경을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장 회장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보다 강하거나,잘난 것이 아니라 그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믿고 묵묵히 노력한다는 것"이라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목표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책에는 장 회장의 인간적인 면모도 담겨 있다. 그는 "주부 입장에서 직접 써봐야 제품의 장단점을 알 수 있다"며 가족들에게 빨래만큼은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한때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주저없이 '빨래'라고 답했을 정도였다.
장 회장은 정치에 대한 소감도 밝혔다. "짧은 국회의원 생활(2000년 4월~2001년 7월)도 해봤지만,정치는 저와 영 안맞았습니다. 기업인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발버둥을 치는데,정치인들은 국민의 세금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기업인에게 목숨과도 같은 시간 약속은 어찌나 안지키던지….기업인의 본분은 회사를 잘 경영하는 데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