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채권단과 현대그룹이 현대상선 현지법인의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예치금 1조2000억원의 출처 확인을 놓고 정면 충돌할 조짐이다.

채권단은 대출서류 제출 마감시한인 14일 밤 12시까지 진전된 소명이 없으면 현대그룹과 맺은 현대건설 매각 양해각서(MOU)를 해지할 태세인 반면 현대그룹은 "대출계약서 제출 요구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만큼 응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13일 "현대그룹이 자료 제출을 끝까지 거부한다면 채권단으로서도 현대그룹과 매각 작업을 진행하기가 부담스러워진다"고 말했다.

앞서 채권단은 현대그룹에 14일 밤 12시까지 프랑스 나티시스은행과 맺은 대출계약서 또는 구속력있는 텀시트(term sheet · 세부계약 조건을 담은 문서)를 제출토록 요구했다.

외환은행 등 현대그룹 채권단은 아울러 현대그룹이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을 거부하면서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것을 법원이 수용한 것에 대해 이의신청을 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 9월 신규 대출과 만기연장 중단 등의 금융제재를 풀어달라며 현대그룹 계열사가 채권단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현대그룹은 대출계약서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밝히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전례가 없는 무리한 요구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현대그룹이 향후 소송전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대출계약서는 아니더라도 추가 부속서류 등을 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채권단(주주협의회)에서 MOU 해지를 결정하려면 80%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주요 채권은행의 의결권 비율은 외환은행 24.99%,정책금융공사 22.48%,우리은행 21.37% 등이다. 이 중 공기업인 정책금융공사와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은행은 주주협의회에서 현대그룹이 자금 출처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매각 작업을 진행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MOU 해지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MOU 해지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이에 앞서 현대그룹이 10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MOU 해지금지 가처분 신청은 당사자 심문 일정조차 잡지 못한 상황인 만큼 14일까지 결론나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입법조사처는 이날 '공적자금 투입 기업 매각의 개선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현대건설 등 공적자금을 투입한 기업의 매각은 채권단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보다는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고려해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입법조사처는 "공적자금은 기업의 생산활동 중단으로 국민경제에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투입하는데 정상화가 이뤄진 기업을 고가에 매각하면 대우건설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다시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는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태훈/이현일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