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극심한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주변 4강(미 · 중 · 일 · 러)의 군사비 지출은 오히려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국전략문제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동북아 전략균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1조5310억달러로 전년도에 비해 5.9% 늘었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한반도 주변 4강의 군사비는 8653억달러로 전 세계의 56.5%를 차지하면서 전년보다 무려 612억달러나 늘어났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강대국들의 군사비 지출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 미국의 2009년 군사비(6610억달러)는 세계 전체의 43%로 중국의 6.6배,러시아의 12.4배,일본의 13배에 달했다. 이는 2~15위 국가의 군사비를 모두 합한 것(5921억달러)보다 689억달러나 더 많다. 미국은 올해 군사비 또한 6810억달러(추정)로 지난해보다 3% 정도 증액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군사비 증액은 미국보다 더 폭발적이다. 중국은 2008년 849억달러(100조원)의 군사비를 지출,세계 2위로 올라선 데 이어 지난해 1000억달러 이상을 군의 현대화 · 첨단화에 쏟아부었다. 지난 10년간 군사비 증가율은 미국이 66.5%인 데 반해 중국은 194%였다.

홍성태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은 "한반도 주변 4강이 세계적 경제불황 속에서도 엄청난 군사비를 증액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미 · 러 간의 전략 핵무기는 감축되고 있지만 주변 4강의 첨단전력 경쟁은 기존 지상 · 해양 · 공중전을 뛰어넘어 새로운 전장(사이버 · 비대칭전력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의 군사비는 241억달러로 전년에 비해 44억달러 줄었다. 북한은 50억달러 안팎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 은폐된 수치로 실제 군사비는 재정 대비 30%인 70억달러 정도인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전쟁 수행능력 및 전투 준비태세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2000년 6 · 15선언 이후 남한의 대북 지원에 힘입어 급격히 늘어났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발표한 '아시아 군사력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1999년 21억달러에서 2000년 20억9000만달러로 소폭 줄었으나 이후 45억달러(2001년)→50억달러(2002년)→55억달러(2003 · 2004년)→60억달러(2005년)→50억~60억달러(2005~2009년) 수준으로 꾸준히 늘었다.

북한은 늘어난 군사비를 잠수함 · 상륙정 개발에 투자하고 핵무기,생물 · 화학무기 등 '비대칭전력' 강화에 집중적으로 썼다. 김태우 국방연구원(KIDA) 박사는 "북한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한국을 직접 공격하는 시대로 진입했다"면서 "군사적 도발을 지속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