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랍에미리트(UAE)의 두 도시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다녀왔다. 올해부터 매년 12월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세계보건의료총회(WHC) 중동 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두바이는 몇 년 전에 잠깐 방문한 적이 있지만,아부다비는 처음이라 생소했다. 하지만 아부다비의 20~30대 공무원들이 자칫 오만하게 보일 만큼 자신감에 넘쳐 있는 데서,2008년 가을 세계적 경제위기 이후 두바이를 제치고 명실상부한 UAE의 종주국이 된 아부다비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두 도시의 관계 역전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두바이 시내 곳곳의 대형 간판들에 셰이크 모하메드 두바이 통치자의 사진 대신 아부다비의 통치자이자 UAE 대통령인 셰이크 칼리파의 사진이 내걸려 있다는 점이었다.

두바이는 작년 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후퇴하고 있다. 세계 최대 건물인 '버즈 두바이'의 이름도 '부르즈 칼리파'로 바뀌었다. 몇 년 전의 활기찬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최근 차츰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부르즈 칼리파' 주변의 타워크레인들은 가동을 중단한 상태였고,두바이 서쪽 주메이라 지역의 주상복합건물 수십 채도 수십 층의 골조가 올라간 채 공사가 중단돼 지구 종말을 그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변해 있었다. 세계 최대 인공섬이라는 팜 주메이라도 애틀란티스호텔을 제외하면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두바이의 980개 건설 프로젝트 중 절반에 가까운 495개 프로젝트가 개점휴업 상태라고 한다.

반면 아부다비는 몇 년 전의 두바이 못지않은 건설 붐이 일어,24시간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곳곳에서 초대형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고,페라리 자동차 공장도 들어섰다.

두바이의 굴욕은 자기 자본이 아닌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의한 경제 성장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두바이가 이대로 완전히 몰락할 것이라는 시각은 별로 없다. 두바이는 여전히 적지 않은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 한복판에서 안정된 치안을 유지하고 있으며,개방을 두려워하지 않는 각종 정책을 통해 금융 물류 교통 분야에서 중동 지역 허브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UAE 원유 저장량의 90%를 가지고 있는 아부다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두바이의 유일한 선택이기도 한 이 전략은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내가 처음 두바이를 방문했을 때 받은 인상은 영화 '스타워즈'에 나온 우주 도시가 지구상의 이곳에 재현됐구나 하는 것이었다. 인도 파키스탄 등 다양한 아시아인과 중동인은 물론 전 세계 백인과 흑인들이 모여든 이 도시는 과연 범세계적인 개방성을 지니고 있었다. 두바이가 '한물갔다'고들 하지만,축구장 50개 규모의 '두바이 몰'은 여전히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인종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그 개방성과 세계성의 미덕이 계속 살려질 수 있다면 두바이는 경제 위기를 딛고 다시 부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왕준 < 명지의료재단이사장 lovehospital@kore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