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철을 맞아 각 기업마다 임원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국내 선도 그룹의 세대교체형 인사 영향으로 다른 대기업의 인사 폭도 커지는 느낌이다. 모름지기 인사란 업무실적 평가 결과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지만 일부 운이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직으로 물러나는 사람들을 위로할 때 '운칠기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명(命)'은 타고나는 사주팔자의 개념이지만 '운'(運)은 흐름,즉 자기 인생의 길이다. 그 길은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운은 섭리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지만,그렇다고 해서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행운은 간절히 바랄 때는 오지 않고,거의 포기했을 때 불현듯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올해 기록한 생애 최초의 홀인원이 그랬다. 10여년 전 골프 기량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홀인원을 절실히 바랐다. 홀의 깃대를 맞힐 만큼 감도 좋았지만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고 그래서 꿈을 접었다. 그런데 지난 여름 강원도에서 별 생각 없이 허겁지겁 친 공이 홀로 빨려 들어갔다.

오래 전 얘기지만 모 기업의 신입사원 면접 현장에서 '박도사'란 인물이 지원자의 관상을 봤다는 일화가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인재를 뽑을 때 여러 요소를 신중하게 고려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봤다. 그런 노력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그 기업이 잘 나가고 있다. 세계적 기업을 일군 다른 경영자들도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그에게 운세를 물었다고 한다.

인생의 중반을 넘기면서 운칠기삼의 의미를 새롭게 곱씹게 된다. 어려움이 닥쳐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일이 술술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어떤 이는 학창시절 총명하고 공부도 잘했지만 임원 승진에 실패해 중도하차하기도 한다. 왜 누구에게는 운이 따르고 다른 누구는 지지리도 운이 없는 것일까?

주역이나 명리학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어느 책에서 본 '행운은 수학공식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안목과 여유가 있는 사람을 따른다'는 구절에 공감이 간다. 흔히 장수나 리더를 평할 때 지장(智將)보다는 덕장(德將)이,덕장보다는 복장(福將)이 최고라고 한다. 행운을 가져오는 리더는 세상을 보는 안목이 남다를 뿐 아니라 내리막 길에서도 초조해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행운은 맞이할 준비가 된 자에게 온다. 전설적인 골퍼인 게리 플레이어는 운이 좋아 우승했다는 일부의 반응에 "저는 행운아입니다. 그런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행운이 더 따르더군요"라고 응수했다.

우리나라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국운 상승기를 맞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연평도 사건이 터지면서 불안감도 늘었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 곳곳에 탁월한 식견과 여유를 갖춘 복장들이 많이 나타나 좋은 운의 흐름을 이어가기를 빈다.

이재술 <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대표 jaelee@deloitt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