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미디어 제국'의 지원 덕에 정권 수명을 연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 "이탈리아 거대 언론을 소유한 베를루스코니는 항상 아첨꾼과 젊은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있고,로마제국의 황제도 그 앞에선 무색할 정도다. "(뉴스위크 일본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74)가 14일 상 · 하원 신임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3표 차의 신승으로 정치 수명을 연장하자 이탈리아 전역에선 의회 표결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졌다. 17세 나이트클럽 댄서와의 성추문과 권력 남용 의혹을 덮기 위해 실시된 신임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살아남으면서 베를루스코니의 질긴 정치생명이 가능한 배경에 관심이 커진다. 주요 외신들은 "이탈리아 방송과 주요 인쇄매체를 소유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가 여론을 통제하면서 추문과 비리 속에서도 살아남았다"고 분석한다.

◆방송 사유화로 부패 · 추문에도 건재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미디어 타이쿤(media tycoon)'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이탈리아 언론 산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막부시대 일본 쇼군의 대외적 호칭이었던 '타이쿤(大君)'은 영어권에서 '비즈니스에서 큰 성공을 거둔 거물'을 지칭하는 단어지만,막후에서 제왕적 권력을 누린다는 부정적 어감도 포함돼 있다.

그는 이탈리아의 4개 지상파 민영 텔레비전 방송 중 3개를 소유하고 있고,인터넷 미디어 그룹인 '뉴미디어'도 가졌다. 잡지 '파노라마' 등 다수의 출판기업도 거느리고 있다. 베를루스코니가 소유한 민영방송 3사와 그가 통제할 수 있는 국영 RAI방송을 합하면 이탈리아 TV방송 시장의 90%를 개인 통제하에 둔 것이다. 이탈리아 국민의 80%가 TV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특정인이 이탈리아 전 언론을 휘하에 둔 셈이다. 총리의 성추문 등을 보도했던 레푸블리카 등 일부 신문에 대해선 거액의 명예훼손 소송으로 압박해왔다.

이처럼 베를루스코니는 국내 언론을 사유화해 비판 언로를 틀어막으면서 각종 실정과 추문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시사주간 타임은 '실비오의 소녀들'이라는 기획기사에서 "베를루스코니가 어리고 예쁜 여자들을 이용해 이탈리아 정치문화를 연예화시켰다"며 "30년간 방송과 출판이 특정인의 사유물이 된 결과 이탈리아인들이 보고,읽고,생각하는 모든 것을 베를루스코니가 조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1960년대 건설업으로 큰 돈을 번 베를루스코니는 반독점법 등 정부 규제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역 방송국들을 잇따라 사들였다. 이후 소유 방송사들을 대형 상업TV그룹으로 재편한 뒤 이를 발판으로 1994년 총리직에 올랐다. 이후 세 차례나 총리직에 오르면서 2차대전 이후 이탈리아 최장수 총리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존 메릴 미국 미주리대 교수는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 신문과 방송,출판,광고업을 거의 거머쥐면서 이탈리아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탈리아 전역 격렬 시위

유럽 4위의 경제대국 이탈리아가 막대한 재정적자로 그리스 등과 함께 'PIGS' 국가로 분류됐고,유럽에서 탈세가 가장 심한 나라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 등 실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의회가 그를 재신임하자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전역에서 격렬한 반대시위가 불거졌다.

BBC방송은 "로마 등 주요 도시에서 수천명의 시위대가 '정부 교체'를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며 "돌과 화염병,계란,페인트,최루탄이 로마 시내를 뒤덮었고 경찰과 시위대 1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야당들은 투표 결과에도 불구,"베를루스코니의 생존은 피투성이 승리에 불과하고 현 정부는 임기 말까지 가지 못할 것"이라며 여전히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일부 정치 분석가들은 "총리 임기가 끝나는 2013년 전에 조기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며 정국 불안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