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11시 동대문역 근처 '약속다방'.

혹한의 추위 속에 쪽방촌 봉사활동을 마친 최지성 부회장이 기자들과 둘러앉았다. 쌍화차를 시킨 후 "추운 날씨에 취재하느라 고생들 했어요"라며 쪽방촌과 제조업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조업이 무너지면 핵심 일자리만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정규직도,비정규직도,시간제근로도 없어져 쪽방촌 사시는 분들이 재활할 기회마저 사라집니다. " 제조업이 사회시스템의 근간이 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어 "그래서 삼성은 제조업을 놓지 않을 겁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제조업이 대부분 중국에 위탁생산 체제로 가는 것과는 다른 삼성만의 길을 가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최 부회장은 "과거 봉제 완구 등 제조업이 성장했을 때는 이런 분들이 일할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다 중국으로 가니…"라며 안타까움도 표시했다. 멕시코 사례도 들었다. 그는 "멕시코 공장을 처음 세웠을 때는 판자촌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공장지대가 생기고 몇 년이 지나니 벽돌집이 세워지고,또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전체 사회가 발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최 부회장은 "추운 곳에서 쪽방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 얼굴 좀 보고 가겠습니다"라며 다방을 나섰다.

이에 앞서 최 부회장은 이날 오전 10시쯤 창신동 436-33호 이현구씨(62) 집을 찾아 준비해간 쌀과 통조림 등이 들어있는 선물박스를 전달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가파른 경사의 어두운 3층 계단이었다. 최 부회장은 익숙하게 올라갔다. 그는 "쪽방은 네 번째여서…"라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점퍼 차림에 박스를 들 벙어리 장갑을 손수 준비해오는 쪽방봉사의 연륜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 평 남짓한 방에 들어서자 이씨는 이불 속에 넣어 따뜻하게 데워둔 쌍화차를 꺼내 최 부회장에게 건넸다. 최 부회장은 "자주 못와 죄송합니다. 저희는 차를 준비해왔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유자차를 따라주며 15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최 부회장은 대화시간 내내 이씨의 무릎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이씨는 '담화'라는 책을 꺼내 밑줄 그어둔 '베풀지 않는 곳에 재물이 모이지 않는다'는 부분을 읽어 주며 "이맘 때가 되면 삼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최 부회장은 "건강하셔야 합니다"라는 인사를 남기고 다시 3층 계단을 내려왔다.

최 부회장은 기자에게 "봉사는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는 거예요. 이런 거 생색내고 싶지 않은데 추운데 고생시켜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다음 선물배달처로 발길을 돌렸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