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몰아친 지난 15일 오후 7시 서울 영등포역.지하철 1호선에서 내린 인파가 타임스퀘어 지하상가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곳에서 30년째 옷 장사를 하고 있는 '무한연출'의 이정옥 점주는 "타임스퀘어가 생긴 이후 기존의 40~50대 유동인구는 줄고 20~30대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평일이니까 이 정도지,주말에 지하상가 통로는 사람들로 미어터져 평일보다 매출이 오히려 못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옷가게의 김혜영 점주도 "우리 가게 주고객인 40~50대 주부들도 평일에만 들른다"고 전했다.

올해 영등포 상권에 '르네상스(부흥)'가 일어났다. 유동인구가 고령화되고 불법 게임방이 상권 활력을 꺾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던 영등포 역세권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경방이 세운 타임스퀘어 덕분이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이후 1년간 7000만명이 다녀갔다고 경방 측은 추산했다.


◆타임스퀘어는 '고객 블랙홀'

타임스퀘어에는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CGV영화관,메리어트호텔 등 핵심 점포를 비롯해 패션 푸드 문화 레저 업종의 200여개 브랜드 매장이 골고루 자리잡고 있다.

경방 측은 개점 이후 1년 동안 총 1조1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다.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 조금 못미치는 수준의 연매출이다. 윤강열 경방타임스퀘어 영업판촉팀 과장은 "평일에는 평균 16만명,주말에는 28만명씩 방문해 하루 평균 매출이 28억원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방문객에 비해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아직은 많지 않은 편이지만,멀리 떨어진 지역의 소비자들이 몰려오는 '빨대효과'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회사원 장주리씨(24)는 "전에는 영등포에 올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친구들이 모두 타임스퀘어를 선호해 약속 장소를 이곳으로 잡는다"며 "모든 게 한 곳에 다 몰려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경방 측은 타임스퀘어 개점으로 총 3만50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영화관 푸드코트 패션전문점 호텔 등에서 상시 근무하는 직원만 1만5000명이 넘는다. 타임스퀘어 방문 고객의 지역 분포를 보면 목동,신정동,여의도,구로,신길동 등 핵심 배후지역 외에 부천,고양,광명,김포,안양,시흥 등 수도권 서남부의 비중이 30%를 차지한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관광객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오목교는 지역상권으로 고착

서울 양천구와 강서구 일대에서는 오목교 지하와 지상의 점포들이 '알짜 상권'으로 꼽혔다. 타임스퀘어가 생기기 전까지는 현대백화점 목동점이 '빨대 역할'을 했다. 올 들어선 사정이 달라졌다. 목동 일대 10~20대와 주부들의 놀이 · 쇼핑공간으로만 자리를 굳혔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동네 손님들을 상대로 한 장사는 그런대로 짭짤하지만 상권이 더 팽창할 여지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G공인중개사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이 들어선 이후 오목교역 주변이 목동오거리를 제치고 목동의 중심이 됐다"며 "현대백화점 지하는 영화관과 푸드코트 및 캐주얼 패션점을 무대로 10~20대들이 즐기고,백화점 매장은 목동에 사는 주부들의 외식 · 쇼핑 공간이 됐다"고 설명했다.

점포 임대료가 가장 비싼 지상의 커피점과 음식점은 이 일대 직장인들이 주고객이다. 지상과 지하 상가,백화점 매장의 고객층이 뚜렷이 구분되는 것이다. 이처럼 고객은 다르지만 목동에 집이 있거나 직장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전형적인 지역상권인 셈이다.

취재진이 만난 소비자도 목동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현대백화점 위의 주상복합 아파트 '하이페리온'에 사는 김윤정씨(35)는 "쇼핑과 장보기,책 구입 등 웬만한 소비생활은 현대백화점에서 다 해결한다"며 "타임스퀘어에 몇 번 가봤는데 어린 애들을 데리고 다니기가 불편했다"고 말했다.

목동 아파트에 사는 김성경양(16)은 "친구들과 만날 때는 영화관과 푸드코트가 있는 현대백화점 지하에서 만나고,쇼핑을 할 때는 버스로 15분 거리인 타임스퀘어로 간다"고 말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