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산다…."

지난 10월 경영 일선에 복귀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대한통운 매각을 결심하면서 주변에 이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통운을 팔아서라도 나머지 계열사에 대한 구조조정을 하루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금호가 대한통운을 포기하고,금호산업 금호타이어 금호석유화학 아시아나항공 등 주력 계열사의 조속한 정상화를 추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속도 내는 대한통운 매각

금호가 대우건설에 이어 대한통운을 내놓게 된 이유는 이렇다. 2008년 대한통운 인수 당시 대우건설과 아시아나항공은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각 5500억원,45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이 교환사채는 5년 만기로 상환 연한이 2012년이다. 문제는 대우건설과 아시아나항공이 교환사채를 발행할 당시 맺은 주주간 협약이다. 두 회사가 서로 계열 분리할 경우,교환사채를 일시에 조기 상환해야 한다는 조항이 협약에 담겨 있었다.

이 조항은 산업은행이 지난 13일 사모투자펀드(PEF)를 통해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현실'이 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이 조항에 따라 내년 상반기까지 이미 갚은 금액을 제외한 3500억원가량을 조기 상환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황 호전으로 이익을 내고 있긴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입장에선 한꺼번에 대규모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대한통운이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도 도움이 안된다. 23.8%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으나,말 그대로 자사주여서 매각을 해도 아시아나항공에 자금이 유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남아있는 대우건설 풋백옵션(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되파는 권리) 상환액도 부담이 됐다. 금호 관계자는 "여러 방안을 검토했지만 결국 대한통운 지분을 매각해 아시아나항공의 자금 부담을 덜고 다른 계열사의 경영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지분 매각 가격이 관건

금호가 대한통운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변수는 대한통운 지분 24.0%를 갖게 된 산은의 속내다. 산은이 금호 측과 함께 대한통운 지분 공동 매각에 나서야만,경영권 프리미엄이 높아지면서 지분 매각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산은이 대우건설이 갖고 있는 대한통운 지분을 계속 보유해 향후 매각 가치를 높여 파는 방안에 욕심을 낼 수도 있지만,주채권은행으로서 금호 계열사들의 조속한 정상화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결국 금호 측과 함께 대한통운 지분 공동 매각에 나설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매각 가격이다. 아시아나항공(24.0%)과 대우건설(24.0%)은 2008년 대한통운 인수 당시 주당 17만원에 주식을 매입했다. 현재 주가는 9만원 선을 오가고 있다. 인수 주가가 반토막이 나 있는 셈이다. 금호와 산은 입장에선 경영권 프리미엄을 100% 이상 얹어 팔아야 적어도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 금호와 산은 측이 갖고 있는 지분을 합친 48.0%를 최소 2조원 안팎에 매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산은 관계자는 "금호 측과 매각 가격과 시기를 협의해 결정하는 게 최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금호는 지난해 말 대우건설 공개 매각에 실패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됐다. 결국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고 경영정상화를 추진키로 했다. 풋백옵션 상환 책임을 지고 있는 금호산업과 재무구조가 악화된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추진,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