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열 받는 일이 많고 스트레스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가 많아서"라고 한다. 김 본부장은 "협상하는 사람끼리 모이면 '우리는 3D(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 업종'이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한다"며 "협상팀이 겪는 고초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한 · 유럽연합(EU)에 이어 최근 논란이 됐던 한 · 미 FTA 재협상이 타결됐지만 김 본부장은 여전히 고민이 많다. 가장 큰 걱정은 국내 농업이다.

김 본부장은 "당장 내년에 막바지 협상을 하게 될 호주는 농산물 수출국이고 협상을 준비 중인 중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국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농업 개혁 없이는 중국이나 호주와의 FTA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제 규모가 작은 개발도상국과 FTA를 할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김 본부장은 "최근 타결된 한 · 페루 FTA가 밖에서 보기에는 쉽게 된 것 같지만 실제 협상 과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농업 분야 피해를 우려한 농업계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김 본부장은 "개도국들은 대부분 공업화가 느리고 농업 쪽에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와 FTA를 할 때 농산물 시장 개방을 요구한다"며 "이럴 때마다 농업 보호대책을 마련해야 하는지,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지 국가적으로 고민을 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대 경제권인 미국이나 EU와 FTA를 할 때는 농민들을 달래기 위해 피해 대책을 마련했지만 다른 나라와 FTA를 할 때도 이런 방식을 계속 적용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얘기다.

김 본부장은 "FTA를 통해 우리가 경쟁력 있는 부문에서 이익을 얻으면 우리도 상대방이 원하는 부문에서 개방한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며 "상대방이 바보도 아닌데 우리만 좋은 것을 취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또 "개도국은 나라별로 떼놓고 보면 우리의 수출 비중이 적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상당히 덩치가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 미 FTA에 대해선 "미시적으로 보면 미국에 준 것 가운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점은 수긍할 수 있다"면서도 "몇 년만 지나면 '잘했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자동차 분야에서 양보하는 것이 아까워 미국과의 FTA가 계속 표류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장기적으로 손해라는 논리에서다.

그는 또 "미국이 당초 자동차 관세 철폐시한을 8~10년 후로 연장해달라는 것을 4년 후로 줄여놨고 돼지고기와 의약품 분야에서 우리도 얻은 것이 있다"며 '일방적 퍼주기'란 지적에 반박했다. 미국에서 협상할 때는 비행기표를 네 번이나 바꿨다고도 했다. '이번에 안 되면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며 미국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국회 비준 절차에 대해선 "이번에 수정된 내용을 기존 협정문에 묶어 한꺼번에 비준받을지,아니면 기존 협정문과 별개의 문서로 비준받을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법제처 검토를 거쳐야 하고 국회에서도 협의해야 하는데 아직 협의할 분위기가 안 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 미 FTA를 근거로 EU도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에 대해선 "아직까지 그런 요구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본다"고 단언했다. 다만 FTA와 별개로 한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적은 유럽 자동차업체에 환경부의 '연비 고시'를 어느 정도 완화해 줄지는 앞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김 본부장은 연비규제 완화 수준과 관련,"유럽 자동차는 미국보다 한국에서 많이 팔린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미국 차보다 강화된 연비 기준을 적용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 · 미 FTA에선 한국 시장 판매량이 연간 4500대 이하인 미국 자동차업체에 한해 국내 연비 기준(2015년부터 ℓ당 17㎞ 이상 또는 ℓ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140g 이하)을 19% 완화(ℓ당 13.8㎞ 이상 또는 ℓ당 113.4g 이하)하기로 했다. 김 본부장은 "어느 나라든 새로운 제도로 인해 소규모 제작사가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 예외를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주용석/서기열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