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국가부채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있는 쉬운 탈출구는 없다. "(파이낸셜타임스)

유럽 각국이 그리스 아일랜드를 거쳐 포르투갈,스페인,벨기에로 번지는 재정위기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고심만 거듭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업체들이 스페인에 경고를 던지는 가운데 유럽연합(EU) 차원의 새로운 재정위기 대책은 논의만 무성할 뿐 구체화된 것이 없다. 유럽 재정위기를 해결할 열쇠를 쥔 경제대국 독일이 미온적 입장을 보이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다.

◆스페인까지 위기 번지면 대책 막막

AFP통신은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스페인 저축은행연합(CECA)의 장기채무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낮추고 전망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고 15일 보도했다. CECA의 단기 신용등급도 'F1+'에서 'F1'으로 강등됐다.

피치는 "스페인 저축은행(카하)들의 유동성 우려가 커지면서 저축은행계를 대표하며 저축은행들에 금융서비스 업무를 시행하는 CECA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등급 하향 이유를 설명했다.

1928년 스페인 전역의 저축은행 이권을 대변하기 위해 바스크와 나바르,레반테,카탈루냐,아라곤 등지의 저축은행연합들이 통합,설립된 CECA는 1971년 금융개혁 과정에서 저축은행 지원 펀드업무 등을 이관받은 뒤 일반 저축은행 대출업무도 해왔다.

현재 저축은행 부실은 스페인 경제의 핵심 뇌관이다. 46개 저축은행은 지난해 말 현재 스페인 은행 전체 자산의 41.2%,모기지의 55.7%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스페인의 부동산 호황에 힘입어 모기지를 5배가량 늘렸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부실자산이 급증했다. 저축은행의 부실은 일반 상업은행에까지 영향을 미쳐 스페인을 대표하는 산탄데르은행의 주가도 최근 연초 대비 30% 하락했다.

유로존 4위의 경제대국 스페인이 저축은행 부실에 따른 부담을 견디지 못한다면 그리스 · 아일랜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유로존 전체가 깊은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독일 '해결사'역할 맡을지 미지수

스페인으로 재정위기가 빠르게 번지지만 EU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로존 재정안정기금을 두 배로 확충하자거나 유로존 공통 국채를 발행하자는 등의 대안에 대해 독일이 거부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유로존 구제에 앞장서길 주저하는 독일에 대한 국내외 비판도 거세다. 유로화의 존폐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유럽 리더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적지 않다.

15일 독일 베를린 하원에선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결단력이 없다"거나 "비유럽적 행동"이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우파연정 소속 위르겐 트리틴 의원은 "메르켈 총리가 재정위기 해결에 주저하면서 유로존에서 독일의 국가이미지가 '저축만 하는 게르만 괴물'로 비쳐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EU 27개국은 16일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갖고 재정위기 대책을 논의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