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인물열전] (31) 편작(扁鵲), 겉만 보고 아픈 곳 찾아낸 名醫…그도 사람의 고집은 고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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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짐(兆朕)이란 말이 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느껴지는 기운이다. 특히 병은 그 실체가 감추어져 있으면서 독버섯처럼 자라고,실체를 알았을 때는 손쓸 겨를도 없이 목숨을 앗아가 버린다. 이런 조짐을 미리 알고 대처하는 사람이 명의다. 그 중 중국의 편작(扁鵲)처럼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의사도 드물다.
편작은 발해군(勃海郡) 막읍 사람이다.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젊었을 때는 여관의 관리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객사에 장상군(長桑君)이란 자가 와서 머물곤 했는데 편작은 그를 특이한 인물로 여겨 정중하게 대했다.
장상군은 객사를 드나든 지 열흘 남짓 되었을 때 편작을 불러 "나는 비밀스럽게 전해오는 의술의 비방(秘方)을 가지고 있는데 이제 늙어 그대에게 전해 주고 싶다"고 은밀하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편작은 "비밀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자 장상군은 품안에서 약을 꺼내 편작에게 주면서 "이 약을 땅에 떨어지지 않은 물에 타서 마신 뒤 30일이 지나면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라는 믿기 어려운 말과 함께 자신의 의서를 모두 편작에게 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사마천의 기록이다.
장상군의 말대로 약을 먹은 지 30일이 지나자 담장 너머 저편에 숨어 있는 사람이 보였다. 투시력으로 환자를 진찰하니 오장 속 질병의 뿌리가 훤히 보였다. 겉으로는 맥을 짚어 보는 척했지만 누구도 모르는 비방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명의가 되어 제나라에 머물기도 하고 조나라에 머물기도 했다. 제나라로 갔을 때의 일이다. 환후(桓侯)라는 왕이 편작을 빈객으로 예우했는데,편작이 그를 보더니 대뜸 "왕께서는 피부에 병이 있는데 치료하지 않으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환후는 자신에게 질병이 없다며 "의원이란 자가 이익을 탐해 병도 없는 사람을 두고 공을 세우려 한다"고 헐뜯었다.
닷새가 지나 편작이 다시 환후를 찾아가 "왕께서는 혈맥에 병이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휠씬 깊어질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마음이 상한 환후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닷새 뒤에 편작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좀 더 심각한 어조로 장과 위 사이에 병이 있으니 치료하지 않으면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후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편작을 돌려보냈다.
다시 닷새 뒤에 편작이 찾아와 환후를 쳐다만 보고 그냥 물러나오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든 환후가 사람을 보내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탕약과 고약으로 고칠 수 있고,혈맥에 있을 때는 쇠침과 돌침으로 치료할 수 있으며,장과 위에 있을 때는 약주(藥酒)로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이 골수까지 들어가면 사명(司命 ·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는 고대 전설 속의 신)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병이 골수까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기》 '편작창공열전')
환후는 편작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자리를 피해 떠난 뒤였다. 환후는 결국 치료도 못해보고 죽었다. 병입골수(病入骨髓)란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자신을 불신하는 환후를 치료하지 않고 떠나버린 편작의 태도는 의사로서의 기본 자질을 의심할 수도 있겠다.
이렇듯 인간이란 자신에게 화가 들이닥쳐도 그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에서 보듯 거대한 빙하가 물위로 드러난 것은 그야말로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변변한 대처도 못해보고 죽은 환후는 명의에 대한 신뢰 부족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판단만을 과신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화를 당한 것이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편작은 발해군(勃海郡) 막읍 사람이다.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젊었을 때는 여관의 관리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객사에 장상군(長桑君)이란 자가 와서 머물곤 했는데 편작은 그를 특이한 인물로 여겨 정중하게 대했다.
장상군은 객사를 드나든 지 열흘 남짓 되었을 때 편작을 불러 "나는 비밀스럽게 전해오는 의술의 비방(秘方)을 가지고 있는데 이제 늙어 그대에게 전해 주고 싶다"고 은밀하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편작은 "비밀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자 장상군은 품안에서 약을 꺼내 편작에게 주면서 "이 약을 땅에 떨어지지 않은 물에 타서 마신 뒤 30일이 지나면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라는 믿기 어려운 말과 함께 자신의 의서를 모두 편작에게 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사마천의 기록이다.
장상군의 말대로 약을 먹은 지 30일이 지나자 담장 너머 저편에 숨어 있는 사람이 보였다. 투시력으로 환자를 진찰하니 오장 속 질병의 뿌리가 훤히 보였다. 겉으로는 맥을 짚어 보는 척했지만 누구도 모르는 비방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명의가 되어 제나라에 머물기도 하고 조나라에 머물기도 했다. 제나라로 갔을 때의 일이다. 환후(桓侯)라는 왕이 편작을 빈객으로 예우했는데,편작이 그를 보더니 대뜸 "왕께서는 피부에 병이 있는데 치료하지 않으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환후는 자신에게 질병이 없다며 "의원이란 자가 이익을 탐해 병도 없는 사람을 두고 공을 세우려 한다"고 헐뜯었다.
닷새가 지나 편작이 다시 환후를 찾아가 "왕께서는 혈맥에 병이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휠씬 깊어질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마음이 상한 환후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닷새 뒤에 편작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좀 더 심각한 어조로 장과 위 사이에 병이 있으니 치료하지 않으면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후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편작을 돌려보냈다.
다시 닷새 뒤에 편작이 찾아와 환후를 쳐다만 보고 그냥 물러나오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든 환후가 사람을 보내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탕약과 고약으로 고칠 수 있고,혈맥에 있을 때는 쇠침과 돌침으로 치료할 수 있으며,장과 위에 있을 때는 약주(藥酒)로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이 골수까지 들어가면 사명(司命 ·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는 고대 전설 속의 신)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병이 골수까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기》 '편작창공열전')
환후는 편작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자리를 피해 떠난 뒤였다. 환후는 결국 치료도 못해보고 죽었다. 병입골수(病入骨髓)란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자신을 불신하는 환후를 치료하지 않고 떠나버린 편작의 태도는 의사로서의 기본 자질을 의심할 수도 있겠다.
이렇듯 인간이란 자신에게 화가 들이닥쳐도 그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에서 보듯 거대한 빙하가 물위로 드러난 것은 그야말로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변변한 대처도 못해보고 죽은 환후는 명의에 대한 신뢰 부족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판단만을 과신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화를 당한 것이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