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어제 대통령에게 보고한 새해 업무 계획은 우려를 감추기 어렵게 한다. 방송통신 콘텐츠의 경쟁력 제고, 시장경쟁 활성화 등을 주요 정책 과제로 내걸었지만 실제 내용은 이와는 정반대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에 엄청난 특혜를 줌으로써 케이블방송의 존립 기반과 방송산업의 균형성장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게 불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상파에 대해 다채널방송서비스(MMS) 허용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2012년 말 디지털방송이 시작되면 지상파 주파수에 여유가 생기는 만큼 내년 상반기 중 MMS 도입 정책방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MMS는 데이터 압축기술을 활용, 기존 지상파 방송 주파수 대역(채널당 6㎒) 내에서 최대 4개의 채널을 동시에 전송할 수 있도록 하는 방송서비스다. 이 서비스의 도입은 곧 지상파 방송사들로 하여금 채널 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방송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이 MMS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면서 독과점을 심화시킬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더구나 지상파 방송에 대한 광고 규제까지 대폭 풀 계획이어서 더 심각한 문제다. 방통위는 방송사에는 제작협찬을 허용하고 외주제작사에는 간접 광고를 허용해 줄 계획이다. 하지만 외주제작사에만 허용돼 있는 제작협찬 제한이 풀릴 경우 지상파 쪽으로 협찬이 몰리게 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료방송에만 허용돼 있는 중간광고를 지상파에 허용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중간광고의 높은 광고효과를 감안하면 유료방송에 비해 시청률이 월등히 높은 지상파 쪽을 선호할 것은 당연한 이치다. 게다가 지상파에 생수 · 병원 광고는 물론 피임약 · 수면제 · 비아그라 같은 전문의약품 광고를 허용하는 방안까지 추진한다니 특혜도 이런 특혜가 없다.

지상파 방송과 유료방송 사이에는 지금도 경쟁력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지상파 방송의 채널 수를 획기적으로 늘려주면서 유효경쟁 구도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 케이블방송이나 위성방송 같은 유료방송 사업자의 존립 기반마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내년에야 겨우 걸음마를 내딛게 될 종합편성채널 사업자의 경우는 시작도 해보기 전에 고사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여론의 쏠림 현상 또한 더욱 심화될 게 분명하다.

방통위는 틈만 나면 콘텐츠 시장 활성화, 공정경쟁 환경 조성 등을 약속해왔다. 하지만 온갖 특혜를 통해 지상파를 방송 공룡으로 키우고 유효 경쟁 구도를 무너뜨린다면 그런 환경은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