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17일 공청회에서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적대적 인수 · 합병 방어권을 보다 폭넓게 인정해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의 외국인 지분이 40~50%에 달하는 상황에서 주식 매집자의 공격에 대한 방어가 기업들에는 초미의 관심사가 돼왔다. 기업들은 그동안 포이즌필 발동 요건 완화 등을 강하게 요구해왔고 법무부도 가이드라인에서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법무부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주식 매수자(공격자)가 정관에서 정하는 일정 비율을 넘어 의결권 있는 주식을 취득하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는 부분이다. 예외 조항으로 '주식 매수자가 영향력 행사 목적이 없음을 소명할 경우'를 두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정관에 규정된 비율을 넘는 주식을 제3자가 취득하면 포이즌필 행사가 가능하다.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매수자가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이나 의도가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식 취득 수량으로 볼 때 그럴'개연성'이 있으면 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포이즌필을 적용하려는 기업들은 정관에서'일정 비율'을 결정해야 한다. 경영권 방어 목적 포이즌필의 경우 대부분 외국 회사들은 그 비율을 15%로 정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추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사채나 주식매수옵션은 '주식 취득'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전환사채나 주식매수옵션도 주식의 취득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법 취지에 부합한다"는 의견을 공청회에서 냈다.

가이드라인은 또 포이즌필 도입 당시 정관에서 정하는 일정비율을 넘어서는 주식을 가진 주주가 이미 있는 경우에는 포이즌필 행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다만 해당 주주가 추가적으로 일정비율 이상 주식을 취득하면 포이즌필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미 도입된 포이즌필에 대해서는 주주총회가 1~3년 단위로 유지할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이날 토론에서 윤영신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포이즌필의 행사 조건 · 행사 가액 등을 미리 확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진효 LG전자 법무팀 상무는 "포이즌필 발동 요건을 완화해도 사후적 사법심사를 통해 제도 남용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포이즌필 발동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맞섰다.

법무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은 포이즌필 운용의 적법 · 위법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포이즌필 도입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은 지난 3월 국회에 제출됐으며 법무부는 개정안 시행 전 가이드라인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 포이즌필

poison pill.신주인수선택권이라고도 부른다. 적대적 인수합병과 같은 외부 공격이 있을 경우 시가보다 싼 가격(행사가격)에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를 기존 주주들에게 부여,우호세력을 늘린 뒤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