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업무 계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정책 과제를 의욕적으로 제시했지만 방송 매체 시장을 총체적으로,균형 있게 반영하지 못한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MMS(Multi Mode Service) 정책이 대표적이다. 콘텐츠 진흥에 대해서는 소홀히 한 채,지상파 플랫폼 확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보고한 것이다. 지상파방송의 광고 총량제 및 중간광고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동시에 내놓은 것에 대해 매체 시장에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MMS를 추진하는 지상파방송과 강하게 반발하는 유료방송업계 사이에서 방통위는 딜레마 상황에 처해 있다.

MMS는 지상파 방송이 디지털 전환 이후 여러 채널을 쓰게 되는 것으로 케이블TV,IPTV,종편 등의 사업자들은 기존 광고시장을 잠식해 위협을 줄 수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렇지만 방통위 측은 이것이 기술 발전상의 흐름으로 내년 상반기에 정책방향을 거론하는 것이 적정하다는 입장이다.

MMS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시험 방송을 하면서 논란이 있었고,지금까지 방통위 입장은 정리되지 않았다. MMS는 지상파방송의 1개 채널을 영상 압축 기술을 이용해 3~4개로 증가시킨다. 케이블TV의 디지털화,실시간 IPTV 서비스의 상용화,스마트TV의 도입 등과 같은 다양한 경쟁 플랫폼들에 대응해 지상파 방송 플랫폼을 확대하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지상파방송사의 입장에서 볼 때,경쟁 플랫폼들이 다채널화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세계적 기술 발전 추세인 점을 감안할 때 정부가 무한정 규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MMS 도입으로 지상파방송이 다채널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지상파방송의 독과점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상파방송의 다채널 정책은 종합적인 매체와 채널 정책을 수립한 이후 추진되는 것이 순서다. 위성방송이 SD(표준화질) 방송에서 HD(고화질) 방송으로 기본 전략을 수정하면서,HD 셋톱박스를 보급하고 있다. 케이블TV 역시 HD 방송으로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 지상파방송이 SD급 다채널 방송으로 서비스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 국내 디지털방송의 올바른 방향인가 묻고 싶다. 과연 시청자들이 유료 다채널 방송 환경 가운데,SD급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를 원하는지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SD 프로그램의 글로벌 경쟁력에 대한 검토도 이뤄져야 한다.

지상파계열 채널(PP)들이 1차 창구인 지상파 MMS로 빠져나가면 유료방송사들의 시청자 유인력은 약화될 것이다. 더욱이 광고총량제,중간광고 제도가 실시될 경우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가 크게 증가할 것이고,유료방송사들의 광고는 감소할 것이다. 신생 종편 사업자는 MMS로 인해 지상파 방송 계열의 채널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MMS 실시는 국내 다수 영세 PP들의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2007년 한 · 미 FTA 협상에서 국내 PP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이 폐기됨으로 인해,외국인 간접투자가 100% 허용됐다. 협상 타결 직후 PP들을 위한 진흥책을 마련하겠다던 옛 방송위원회의 정책은 방송통신위원회 체제로 넘어오면서 실종됐다.

콘텐츠가 왕이라고 말하지만,플랫폼 위주의 정책 추진 결과 국내 PP 진흥책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대외 개방을 앞둔 현 시점에서 플랫폼 확대보다 콘텐츠 시장 활성화가 더 급하고 중요한 사안이다. 플랫폼 확대 전략이 콘텐츠 시장에 미칠 영향을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하고 MMS를 추진해야 한다.

이상식 < 계명대 신문방송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