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채권단(주주협의회)이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박탈되면 이르면 이번 주 중 예비협상자인 현대자동차그룹과 매각 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관계자는 "우선협상대상자와 협상을 진행할 수 없으면 예비협상자를 (다음으로) 고려하는 게 순서"라며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안건이 조만간 주주협의회에 상정될 것으로 본다"고 19일 말했다. 그는 "전체적인 (채권단)기류가 가급적 이번에,그리고 연내에는 딜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쪽"이라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5조1000억원(현대차그룹이 제시한 인수금액)을 받을 수 있는 '딜'이 있는데 뚜렷한 명분 없이 무산시키면 주주들에 대한 배임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건설 채권단은 인수자금 출처 소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현대그룹의 우선협상자 지위를 박탈하기 위해 지난 17일 '양해각서(MOU) 해지'와 '주식매매계약(본계약) 체결 동의안'을 주주협의회 전체회의에 상정하면서 '예비협상자인 현대차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부여 문제를 추후 전체 주주협의회에서 협의해 결정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안건도 함께 올렸다. 각 안건의 통과 여부는 22일까지 주주사들의 의견을 취합해 결정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대그룹의 탈락이 기정사실화하는 가운데 채권단이 현대차의 지위 문제를 굳이 안건에 포함시킨 것은 현대건설 매각을 백지화하지 않고 현대차그룹과 협상하기 위한 길을 터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환은행과 정책금융공사,우리은행 등 운영위원회 3개 회사가 의견을 조율한 사안인 만큼 '주주협의회에서 협의하자'는 안건 통과에는 문제가 없을 전망이 많다.

매각 주관사이자 가장 많은 의결권(24.99%)을 가진 외환은행은 원칙적으로 현대차그룹과의 협상에 나서지 않을 명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조속히 매각 절차를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다른 채권은행들도 가급적 매각 절차를 서둘러 끝냈으면 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이번에 매각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언제 다시 매각을 시작할 수 있을지 단언키 어렵다"며 "채권단은 물론 현대건설 발전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차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려면 전체 채권단의 75%(의결권 비율)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정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정책금융공사(22.5%)와 우리은행(21.4%)이 동시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통과가 무난하다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채권단으로선 현대그룹의 반발이 부담이다. 현대그룹은 이날 공식 자료를 통해 "교묘히 입찰방해 행위를 지속하는 현대차그룹의 예비협상대상자 지위를 당장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대차그룹의 이 같은 이의 제기와 입찰방해 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권단이 모든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가능한 한 현대그룹과도 화해를 모색해 법적 송사 없이 일을 진행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 측이 현대그룹이 MOU 체결 직후 납부한 이행보증금 2755억원(입찰가의 5%)을 돌려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태훈/이호기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