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의 2조원 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현대건설 인수대금을 지급하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20일 발표했다.

현대그룹은 현재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자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에 몰려 있다.

현대그룹 측은 "현재 접촉 중인 외국계 전략적투자자(SI)와 재무적 투자자(FI)로 하여금 유상증자에 참여토록 할 계획"이라며 "차입금이 아닌 유상증자 자금으로 현대건설 인수자금을 지급함으로써 '승자의 저주'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관계자는 "유상증자는 나티시스은행에서 빌린 1조2000억원과는 별개"라며 "유상증자가 확정되면 나티시스은행의 대출금을 이 돈으로 갚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증자에 참여할 투자사는 나티시스은행 자회사인 넥스젠캐피털을 비롯해 유럽계 2개사,중동계 2개사,미국계 2개사 등 7개사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대그룹 측은 접촉 중인 투자자가 누구인지,증자 시점이 언제인지 등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현대그룹은 또 "채권단에 낸 나티시스은행 대출확인서는 법적 효력에 문제가 없다"면서 "채권단이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MOU)를 해지하고 4100억원이나 낮은 가격을 제시한 현대차와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것이야말로 배임이며,그동안의 불공정한 조치들의 본심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는 이와 관련,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의 유상증자 계획과 상관없이 현대그룹과 맺은 MOU 해지 안건 등의 의결 절차를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의 유상증자가 채권단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MOU 해지나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등은 채권단 고유 권한으로 현대그룹은 물론 현대차그룹과도 (안건 변경 등을)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정책금융공사 관계자는 "현대그룹 입장을 아직 전해 듣지 못했다"며 "아마도 향후 소송 등을 고려한 포석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앞서 채권단은 지난 17일 △현대그룹과 맺은 현대건설 매매 MOU를 해지하는 안 △주식매매계약 체결에 동의하는 안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할지 여부를 차후 주주협의회에서 결정하는 안 등을 서면 동의 방식으로 주주협의회 전체회의에 상정했다.

이들 안건은 22일까지 표결하게 되지만,채권단은 21일께 결론이 날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권에서는 MOU 해지는 가결,주식매매계약 체결은 부결돼 현대그룹의 우선협상자 지위가 박탈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현대건설 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자동차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신속하게 매각 작업을 진행해달라"고 채권단에 요구했다.

노조는 "현대건설 매각이 무산되고 원점으로 되돌아가 표류하게 되면 10년간 힘들게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고 우리나라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현대건설 임직원의 95%가 선호하는 현대차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힘차게 새출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임동진 노조위원장은 "채권단은 고가 매각 원칙만 고집할 게 아니라 자금 조달 능력,경영 능력,자금 출처 등을 면밀히 검토했어야 하는데 졸속 매각을 진행한 결과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며 "현대건설 매각이 지연되면 채권단이 모두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이태훈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