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포천이 선정한 올해의 기업인 1위에는 낯선 이름이 올라 있었다. 앨런 멀랠리 포드 최고경영자(CEO · 2위),스티브 잡스 애플 CEO(3위) 등 세계적인 CEO를 모두 제치고 가장 높은 자리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넷플릭스의 창업자이자 CEO인 리드 해스팅스였다.

1997년 온라인으로 DVD 대여를 신청하면 우편을 통해 배달해 주는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한 넷플릭스는 창업 10여년 만에 1500만여명의 가입자를 거느린 세계 최대의 온라인 유료 콘텐츠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단순히 DVD를 빌려주는 과거의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언제 어디서나 고객이 요구하는 콘텐츠를 컴퓨터 휴대폰 TV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포천은 넷플릭스를 "하찮은 회사에서 거대한 기업으로 급성장했다"고 평가했다.

넷플릭스의 성장 비결은 고객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혁신적인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소비 경험을 제공하고 고객의 행동을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고객 인센티브 부여 △유쾌한 소비경험 제공 △과감한 자기혁신을 바탕으로 고객의 행동 변화를 이끌었다.

넷플릭스는 사업 초기 DVD 대여 업체들의 주요 수익원이었던 연체 수수료를 없앴다. 당시 대부분의 업체들은 고객들의 불만이 높다는 점을 알면서도 전체 매출의 15~20%에 달하는 연체 수수료를 쉽게 없애지 못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연체 수수료를 없애는 대신 고객이 DVD를 반납하면 즉시 다른 DVD를 고객에게 배송해 줬다. 빌려간 DVD를 빨리 반납할수록 더 많은 DVD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고객의 기호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도 넷플릭스가 처음 시도해 인기를 끌었다. 넷플릭스는 고객이 홈페이지에서 어떤 메뉴를 클릭했으며 과거에 어떤 영화를 빌렸는지 등을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제작,취향에 맞는 영화를 골라주는 '씨네매치' 서비스를 제공한다. 넷플릭스 고객은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첫 화면에서 추천 영화 목록을 살펴볼 수 있다. 고객의 80%가량은 추천 목록에서 본인이 볼 영화를 고른다.

DVD 대여 사업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스트리밍 서비스 등 새로운 사업에 집중 투자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해스팅스 CEO는 지난해 10월 "DVD는 영화를 담는 초기 매체 중 하나로 남을 것"이라며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넷플릭스는 기존 가입자에 대해서는 추가 비용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스트리밍을 통한 콘텐츠 소비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넷플릭스는 지난 5월 조사에서 콘텐츠 스트리밍 분야 시청시간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의 성공은 고객의 행동 변화를 이끄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기업은 고객이 겪는 불편을 해소하고 서비스를 혁신해 고객에게 새로운 소비 경험을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사업에 투자하는 결단력도 필요하다. 해스팅스 CEO의 말대로 고객의 행동을 변화시키기는 어렵다. 그러나 변화를 주도했을 때의 파급력은 굉장하다.

김병수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bs9901.kim@samsung.com